남형종군의 봉사하는 방학 "삶의 가치 배워요"

입력 2007-07-19 16:02:56

학생들은 어쩌면 방학 때 더 바쁘다. 부족한 과목을 보충해야하고, 체험학습도 해야하고, 숙제를 위해 여행도 다녀와야 한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방학마저 고통스럽다. 방학 때만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는 없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고, 보람을 얻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형종(대구 오성고교 3학년)군은 21일부터 6박 7일간 한국 걸스카우트 연맹 주최 '2007 국제도전캠프'에서 봉사요원으로 활동한다. 세계 30개국 1만 여명이 참가하는 대회의 봉사요원으로 선발된 것이다. 500시간 이상 봉사자, 봉사대회 수상자들 중에서 선발됐다.

고등학교 3학년이 여름방학에 봉사활동이라니! 정신나간 짓 아닌가. 실제로 이번 '국제도전캠프'의 대구지역 봉사요원들 중 고등학생은 형종이 뿐이다. 그러나 형종이는 다른 어떤 일보다 이 일이 즐겁다. 자신이 진정하고 싶은 일을 통해 보람을 얻고, 삶을 배운다. 물론 봉사점수는 내신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형종이는 봉사시간으로 내신을 관리할 수준은 진작에 지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제가 공부로는 일등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봉사라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어요. 제가 가장 하고싶은 일이니까요."

남형종군은 초등학교시절부터 크고 작은 봉사활동에 참가해왔다. 중학생 때부터는 토요일과 휴일에 사회복지 법인을 찾아다니며 이웃을 도왔다. 아이가 봉사에 너무 몰두하는 것 같아 남형종군의 부모님들은 타일렀다.

'봉사는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 고등학생인데 그 시간에 공부를 해라.' 그러나 형종이는 틈만 나면 복지시설로 달려가 노인들 목욕을 돕고, 말벗이 되고, 집안 일을 도왔다. 다음주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되는데도 주말과 휴일에는 봉사활동에 참가했다.

"봉사는 즐겁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또 학교에서 배우기 힘든 삶의 가치를 배우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남형종군은 초등학생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선행상과 표창장을 받았다. 학교에서 주는 상도 받았고, 전국 규모의 유명한 봉사활동상도 받았다.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는 '봉사맨'으로 불린다. 다른 학생들이 꺼리는 허드렛일,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해서 얻은 별명이다.

남군은 자연스럽게 봉사를 시작하게됐다. 할아버지는 중증지체장애자로 오래 앓았다. 어린 시절에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챙기기는커녕 어린 자신이 할아버지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원망도 했다.

"집에 아무도 없던 날 할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렸어요. 그날 제가 좀 신바람이 나서 열심히 목욕을 시켜드렸는데, 할아버지가 무척 좋아하셨어요. 할아버지가 웃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어요. 그저 목욕한번 시켜드린 것 뿐인데, 그렇게 좋아하시는 거예요."

남형종 군은 할아버지의 웃음과 칭찬이 좋아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작은 봉사가 타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줄 수 있는지 알게됐다. 결국에는 봉사를 통해 스스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게 됐다.

남형종군은 자연계인 수학과학계열 학생이다. 아버지는 형종이가 과학교사가 되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러나 사회과학계열로 교차지망을 결정했다.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도 동의했다.

"처음에는 펄쩍 뛰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은 좋아하는 일이고, 공부는 공부인데, 이제 와서 교차지망을 하면 얼마나 손해가 큽니까? 그러나 어쩔 수 없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 가장 잘하는 일을 하겠다는 데 어쩌겠어요. 좋아하는 일을 해야 보람 있고 성취도 있을 테니까요."

꼭 봉사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잘 하는 일에 몰두하면 대학입시에도 도움이 된다. 각 대학에서 특기생을 모집하기 때문이다. 남 군의 아버지는 새삼 어린 아들의 방식이 옳았음을 인정했다.

어린 형종이의 봉사활동은가족전체가 봉사활동에 참가하는 계기도 됐다. 근래에는 남군의 부모도 함께 봉사활동에 참가하기도 한다.

"복지관련학과로 진학하고 싶어요. 어렵지만 법적 한계 때문에 지원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차상위 계층과 독거노인들을 보살피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분들께 환한 등대가 돼 드리는 게 제 소망입니다."

어린 얼굴이었지만 형종이의 눈동자는 의지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세월의 틀'에 맞춰 사느라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일쑤이다. 형종이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는 아이였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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