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여행] 방학

입력 2007-07-19 16:10:17

즐거운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식이 있던 날, 대청소를 마치고 방학책을 받아들면 아직 덜 마른 잉크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선생님의 훈시 말씀은 언제나 똑 같았다. 깊은 물가에 가지 말고 높은 나무에 올라가지 말라는 신신당부의 말씀들. 그러나 우리는 양 귀 고막에 터널이 뚫려 선생님의 말씀이 아우토반처럼 무한 질주를 하고 있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선생님의 훈시가 끝나면 아이들은 환호성이 터지면서 밀치고 자빠지며 교실문을 나섰다.

교실을 빠져나온 세 녀석이 작당한 것은 화단에 박힌 맥주병. 지난 겨울 방학 때 화단에 거꾸로 박아놓은 맥주병 세 개를 뽑아 엿 바꿔 먹던 기억이 새로웠다. 다른 아이들은 하나같이 교문 쪽으로 무슨 3. 1만세 운동하는 독립투사들처럼 깨춤 추고 책보를 높이 들고 만세를 부르며 몰려들 갔다.

세 녀석은 교사 뒤편 소사 할배가 거주하는 관사를 지나 화단으로 살금살금 걸어 나갔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후들거리는 게 영 못할 짓이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한 번도 구경 못한 백엽상을 지나 화단 앞에 섰다. 책보를 풀어놓고 맥주병을 뽑아 드는데 갑자기 "누고?"하는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다. 천둥소리를 지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뽑아든 맥주병을 버릴 생각도 못하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곧장 교문을 빠져나와 숨을 헐떡이며 그제야 뽑아든 맥주병을 쳐다볼 마음이 생겼다. 근데, 아뿔싸 맥주병이 반 토막이 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하도 아이들이 맥주병을 뽑아가는 절도사건(?)이 생기자 맥주병을 반토막내서 박아 놓은 것을 알 턱이 없었다. 하필이면 방학을 이용해서 맥주병 서리를 하는 것은 긴 방학이 궁벽한 서리 사건을 덮어주기 때문이었다.

여름방학은 친척집이나 외갓집에 가는 게 고작이었던 그 옛날의 여름 여행과는 달리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어느 곳이든지 갈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여름방학에 가 볼 만한 체험여행지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 안동 병산서원과 지례예술촌

안동 하회마을에서 2km 남짓 떨어진 병산서원에 가면 우리나라 제일의 풍광을 자랑하는 병산을 만대루에서 볼 수 있다. 만대루는 병산서원 들어가는 입구의 누각 형식의 강당으로 이곳에서 경연을 열고 유생들이 경치를 즐기던 곳이다. 낙동강을 끼고 있는 백사장과 얕은 곳에서는 물놀이도 가능하다.

병산서원을 구경했다면 안동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영덕방향으로 가다 수곡교와 박곡리를 지나면 지례예술촌이 나타난다. 이곳은 안동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생긴 마을로 품격높은 예술창작마을로 손꼽힌다. 가까이 안동댐이 있어 주위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 비극의 현장, 거제포로수용소

6.25때 인민군 15먼명, 중국군 2만명 등 17만명의 포로들이 살았던 역사의 현장이다. 전쟁을 모르던 아이들에게 전쟁의 황폐함을 알려주는 산 교육장이다. 생생하게 현장을 재현한 유적관이 역사의 비극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인근엔 몽돌해수욕장이 있다. 작고 동글동글한 자갈이 1.2km나 깔려있어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바닷물이 맑고 깨끗한 것이 매력이다. 인근엔 해금강, 외도, 한려해상 유람선 코스가 있어 1박일 코스로는 제젹이다.

◆ 태종대와 부산아쿠아리움

통일신라 태종 무열왕이 말을타고 활을 쏘며 여가를 즐겼던 곳이라해서 이름 붙여진 태종대. 난대성 활엽수와 절젹을 깎아지른 해안단구는 아이들의 학습 현장으로도 좋다. 해안단구는 과거 해수면 부근에서 바닷물에 침식돼 평평하게 깎인 바위면이 융기하는 지반을 따라 솟아오른 것으로, 한반도 전체가 지각 변동을 거치면서 수면위로 솟아오른 증거를 보여주는 곳이다. 인근 관광지로는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시작해 대변한으로 향하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에 토암도자기공원이 있다. 또한 해운대 해수욕장 근처의 국내 최대의 해저 테마 수족관인 아쿠아리움이 볼만하다.

여름방학 때만 되면 선생님의 훈시말씀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필자도 그 나이가 되어서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한다. "깊은 물에 가지 말고 높은 나무에 올라가지 말라는" 말씀을 은연중에 꼭 명심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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