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논술이야기)고슴도치 딜레마

입력 2007-07-17 07: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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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란 그 결과가 나쁘고 좋고에 관계없이 어떤 특정한 결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경우 모두를 가리킨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 딜레마이다.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면서도 이러한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삶과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할 수 있는 논술은 그 자체가 딜레마의 극복 과정인지도 모른다.

2007년 서울대 수시 특기자 전형에 이러한 딜레마 관련 문항이 출제되었다. 제시문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낙랑의 공주를 현혹하여 고각(鼓角)을 부수게 한 후, 낙랑을 공격하여 복속시킨 호동은 왕의 총애를 받았다. 이에 적자(嫡子)의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운 원비가 호동을 왕에게 참소(讒訴)하자, 자신의 결백을 밝히면 어머니의 잘못이 드러나게 되고, 왕에게 근심을 끼치게 되어 결국 불효를 저지르게 되는 것을 걱정한 호동은 칼에 엎어져 자살하였다.

호동의 자살이 정당한가에 대하여 김부식은 호동이 죄가 없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살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불의(不義)에 빠지게 했기 때문이다.

(문항) 호동과 김부식은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어떠한 가치들이 갈등하는 문제인지 딜레마의 형태로 그 문제를 정의하라.

제시문의 내용을 볼 때 호동이 자신의 결백을 밝히면, 어머니의 잘못이 드러나 왕에게 근심을 끼치게 된다. 호동이 자신의 결백을 밝히지 않으면, 왕을 불의에 빠뜨려 불효를 저지르게 된다. 호동은 분명 딜레마 상황에 직면했다. 문제는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안이다.

추운 겨울 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너무나 추워서 서로 껴안았지만 서로의 가시 때문에 매우 심한 아픔을 느꼈다. 하지만 몸을 떼자니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가시와 추위라는 두 가지 고통을 차례로 되풀이한 끝에 결국 서로를 찌르지 않으면서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알맞은 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처럼 너무 가까이 하기도, 그렇다고 멀리 하기도 어려운 상태를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한다.

이 딜레마는 대인 관계에 대한 인간의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너무 가까이 하면 상처를 입고 너무 떨어지면 외롭다. 인간이 지닌 영원한 딜레마이다. 이 딜레마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아마 그 주체가 사물이거나 논리라면 당연히 적당한 거리를 그대로 지킬 게다. 스스로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움직인다. 다가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사실 그 사람에게 달려가는 마음을 인위적으로 붙잡을 수는 없다. 달려가는 마음에 인위적으로 저항할 때 오히려 상처가 생긴다. 그 상처는 아주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만들어진 상처보다 더 크고 깊을 수도 있다.

○○일보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 1억의 돈을 준다는 광고가 실렸다. 비행기, 로켓, KTX… 별의별 내용의 답변이 올라왔다. 그런데 결국 1등으로 뽑힌 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었다. 그렇다. 사랑한다고 상처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사랑은 행복을 만들기도 한다. 더 사랑하기 때문에 더 많이 상처를 입고 입히기도 하지만 사랑함으로 인한 상처라면 그것만으로도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그 사람들도 이미 그 이전에 어떤 형태이든 사랑을 선택하지 않았나? 그리고 사랑하던 그때, 다소의 아픔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행복하지 않았나? 결국 행복과 관련된 그 모든 선택은 '지금 여기에서'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호동이 지닌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호동이 결백을 밝힌다고 해서 반드시 왕의 근심을 끼친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왕은 그로 인해서 자신의 주위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동의 자살이 결국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김부식의 판단은 보편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호동이 처한 문제 상황을 반드시 부정적 딜레마 상황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즉 그 상황에서 호동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는 더 많았던 것이다. 가장 논리적인 진술이어야 할 논술에 대단히 감성적인 해결 방향이 존재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논술은 알면 알수록 더욱 재미있다.

한준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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