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경적의 예의

입력 2007-07-16 07:34:59

대도시의 도롯가나 아파트 단지 안에는 흔히 경음기 사용 금지를 뜻하는 표지판이 서 있다. 금지를 상징하는 붉은 원안에 검은색 나팔이 그려져 있고 나팔 위로 사선이 지나가는 형태다.

경음기는 영어로 혼(horn)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경음기의 의미로 부르는 '클랙슨(Klaxon)'은 자동차용 경음기를 최초로 제작한 회사의 이름이다. 복사기의 제록스, 스테이플러의 호치키스와 마찬가지로 고유명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보통명사가 된 경우인데, 국립국어원의 '국어순화자료집'에서는 클랙슨을 경적으로 바꾸도록 하고 있다.

혼은 짐승의 뿔(horn)을 잘라서 경적용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 서양 고전음악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관악기인 혼, 곧 호른은 뿔피리 모양으로 긴 잉글리시 호른과 둥글게 말린 양뿔 모양의 프렌치 호른으로 나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음기 사용 금지 표지판의 혼은 뿔 모양이 아니라 트럼펫에 가깝다.

혼과 트럼펫이 모두 악기이긴 해도 용도는 아주 다르다. 군대에서 혼이 적의 내습을 알리는 경적이라면 트럼펫은 기상나팔이나 행진음악에 주로 사용한다. 결론적으로 놀라게 하거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트럼펫을 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영어 'horn'을 직역해서 뿔 모양의 나팔을 경음기 사용 금지 표지판에 집어넣자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알고나 있자는 뜻이다.

경음기 사용 금지 표지판의 나팔 모양이 어떻든 간에, 표지판이 있든 없든 간에 자동차 경적음은 우리나라 대도시 도심에서 언제나 울려 퍼지고 있다. 호른협주곡 같은 음악으로 사람을 즐겁게 해주려는 건 물론 아니다. 자동차 경적은 '야, 조심해. 나 너 때문에 방해받고 있고 몹시 기분 나빠!' 하는 언어 표현의 대용이다.

그런데 요즘 차들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이 방음이 잘 되어 있다. 냉방장치 역시 훌륭해 한여름에도 문을 닫고 다니는 차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되니 뒤에서 아무리 경적을 울려도 잘 들리지 않는다. 또 대로변에 차를 세워놓아서 통행을 방해하는 운전자들은 대부분 비상등만 깜박거리게 해놓고 차 안에 없다. 그러니 아무리 큰 소리가 나는 경음기를 울려대도 듣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경음기 사용 금지 표지판의 규제를 위반하여 경적을 울려대는 차 운전자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걷거나 서 있는 보행자들이다. 경적 소리는 인도든 차도든 가리지 않고 날아들어 청각신경을 공격하기 때문에 귀를 보호하는 아무런 장치도 없이 무심코 길을 가던 사람이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피해를 입고 화가 난 보행자가 자동차를 향해 경적과 마찬가지 의미를 담은 말을 하는 경우도 봤는데 또 그 차 안에서는 방음장치 덕분에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대부분 경적을 울린 차는 휙 가버리기 때문에 보행자가 차보다 빠른 속도로 쫓아가지 못하면 "나 방금 고막 터졌거든. 기분 몹시 나빠!"라는 말조차도 할 수 없다.

또 한 부류의 무고한 피해자는 기름을 아끼기 위해 냉방장치를 켜지 않고 차창을 열어놓은 채 운전하는 사람들이다. 요즘처럼 더운 날에 자신과 상관이 있건 없건 경적음을 들으면 짜증이 더해질 건 자명하다.

요점은 이렇다. 경음기 사용 금지 구간에서 경음기를 사용하면 분명히 적발하여 처벌하라. 경음기 사용 금지 구간에서 경음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원인을 제공하는 차량을 미리 적발하여 조치를 취하라. 사후에는 분명히 처벌하라.

운전면허 시험에서 운전과 차량에 관련된 예절과 상식에 관한 문제의 배점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건 어떨까. 경음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곳에서 경음기를 사용하다 적발되면 벌과금이 2만 원, 벌점이 10점이라는 것을 포함해서 세세한 처벌 항목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확실히 함부로 경음기를 울리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욕설이나 폭언과 마찬가지로 경적음이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아는 사람이 운전대를 잡도록 해야 한다.

아침에 창문을 열어놓은 채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차를 운전하다가 경적음을 듣고 깜짝 놀란 뒤에, 하루 종일 복수를 하듯 수십 번이나 경적을 눌러댔다는 사람을 만났다. 그의 경적음을 들은 사람들 역시 별 상관없는 보행자를 놀라게 했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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