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슬럼, 지구를 뒤덮다

입력 2007-07-14 07:00:21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슬럼, 지구를 뒤덮다/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논쟁을 포함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찬·반 논란은 우리사회의 화두로 등장한지 오래됐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이 인류의 삶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킬지, 아니면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켜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지는 여전히 대립하고 있다.

스스로 '국제사회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환경주의자'라고 밝힌 저자 마이크 데이비스(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 역사학 교수)는 '세계 도시의 슬럼화'라고 부를 수 있는 전지구적 현상의 구체적인 풍경들을 하나하나 조망하며, 그 원인과 효과를 추적하면서 '제3세계 농촌의 몰락' '워싱턴 정치경제 권력의 비대화' '경제의 비공식화' '고실업 및 비정규직의 증가' '중산층의 탈정치화·개인주의화' 등 신자유주의의 다양한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다시말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기획이 낳은 괴물 그 자체가 '슬럼'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 같은 저자의 주장에 대해, 그럼 이전의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도시문제 혹은 그보다 더한 인권문제가 없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또 국가 전체가 굶주림으로 시달려온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부정이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의 세계 각지 슬럼 현실에 대한 섬세한 이해는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슬럼이라고 하면 달동네 판자촌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국제적인 기준으로 볼 때, 반지하방과 옥탑방, 고시원 거주자들도 모두 슬럼 주민이다. 대한민국은 UN의 '국가별 슬럼 인구 순위' 자료에서 페루보다 한 단계 높은 세계 12위에 랭크되어 있고, 도시인구 중 슬럼인구는 무려 37%로 추산된다.

홍콩의 '새장'( 침대 하나짜리 독신용 거주지를 가리키는 특유의 용어), 마멜루크 묘지 무덤을 창조적으로 개량한 카이로의 '사자들의 도시', 옥상에서 맨 몸뚱이로 야영하거나 노숙하는 프놈펜이나 알렉산드리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케냐 다다드·콩고 고마 등 난민촌에서 무허가 토지개척(스커팅),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무허가 토지개척을 부추기는 해적형 분양지, 슬럼 지주들의 셋집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슬럼들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또 주민 절반인 500만 명이 화장실이 없는 인도 뭄바이의 똥통생활, 인근 상수도 시설에서 공짜로 물을 퍼와 비싼 값에 팔거나 화장실 하나 지어놓고 주민들이 한 번 이용할 때마다 하루 생활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을 받는 악독한 중간계층과 부패 공무원, 정치인, 외국자본을 고발한다. 이 밖에도 슬럼은 통상 경제적 가치가 없는 위험지대에 있기 때문에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고, 인구밀도가 높아 화재 등이 대형참사로 이어지기 일쑤다.

저자는 슬럼화의 원인으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합의한 워싱턴 컨센서스와 국제자본주의 혁명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는 IMF·세계은행, 탈식민 엘리트의 부패와 무능, 중간계층의 가로채기, 대형 NGO(비정부기구)들의 성과주의를 지적한 뒤, 슬럼 거주자들이 새로운 저항적 정치 주체로 등장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344쪽, 1만 5천 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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