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저자!" '보통 사람'들의 책 만들기

입력 2007-07-14 07: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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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나 소설가, 전문인 등 일부 계층에 국한됐던 책 내기가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대구지역 한 출판사에서 펴낸 보통 사람들의 책들.
▲ 시인이나 소설가, 전문인 등 일부 계층에 국한됐던 책 내기가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대구지역 한 출판사에서 펴낸 보통 사람들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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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뇨 완치의 비밀'이란 책을 낸 김완수 씨가 책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부산에서 시내버스 운전을 하며
▲ 부산에서 시내버스 운전을 하며 '지리산 주변 가이드'란 책을 낸 송성섭(오른쪽)씨와 에세이집을 낸 김지욱씨.

"보통 사람의 글도 세상에 나름의 의미를 던져 준다."

책(冊)을 내는 것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개인 출판 시대'가 활짝 열렸다. 시인이나 소설가, 대학교수나 전문가 등 그동안 일부 계층에 국한됐던 책 내기가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건강이나 여행, 에세이 등 다양한 주제로 책을 내 '나도 저자(著者)' 반열에 오른 보통 사람들의 책 내기 이야기를 들어봤다.

▶당뇨 완치 책 낸 노신사!

상업에 종사하는 김완수(61·대구시 서구 비산동) 씨. 동네 골목길에서 쉽게 만날 법한 노(老)신사인 그는 작년에 책을 내 저자가 됐다. 책의 제목은 '당뇨 완치의 비밀.' '당뇨병을 직접 체험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쓴 완치 과정에 대한 이야기'란 책 표지의 글처럼 아이러니하게도 당뇨병 '덕분에' 저자가 된 것이다.

김 씨는 12년 전인 49세에 당뇨병에 걸렸다. "당뇨병에 걸리고서도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았어요. 6년 전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약을 써도 혈당치가 내려가지 않아 인슐린 주사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그때서야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그 후부터 그의 생활은 확 달라졌다. 당뇨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나름대로 한약재로 약을 만들어 복용했다. 급한 성격을 고치려 애를 쓰는 것은 물론 식사량 줄이기, 단것 먹지 않기, 꾸준한 운동 등 당뇨병 극복에 안간힘을 썼다. 덕분에 4년 전부터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당뇨병이 호전됐다.

"나름의 방법을 통해 당뇨병을 극복하고보니 제가 실천한 방법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통 받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자는 뜻에서 책을 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책을 내는 방법을 전혀 몰라 답답했다는 김 씨는 먼저 달력 뒷장에 생각나는 대로 책의 제목과 소제목을 적었다. 그리고 A3용지를 구해 연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잠을 자다 좋은 내용이 떠오르면 일어나 글을 썼고, 어떨 때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15일 동안이나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1년 반이란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 150장가량의 원고가 완성됐다.

평소에 길을 가다 눈여겨봐둔 출판사를 찾아 책 출간을 맡겼다. 150장이나 되는 종이에 연필로 꼼꼼하게 쓴 원고를 보고 출판사 측에서 적잖게 놀라더라는 게 그의 얘기다. 초판으로 500부를 찍어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돌리고, 다시 1천 부를 더 찍었다. 출판에 드는 비용은 김 씨가 부담했다.

"책이 많이 판매되지 않아 돈을 벌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울산이나 전라도 등 전국 각지에서 '책을 잘봤다.' '당뇨병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전화를 받을 때 책을 낸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김 씨는 조만간 또 책을 낼 계획을 갖고 있다. 미리 정해둔 제목은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책'. 그는 "책을 내기까지의 과정이 '해산의 고통'에 맞먹을 정도로 힘들었다."며 "그러나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하다."고 털어놨다.

▶지리산 가이드 책 낸 운전기사!

부산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송성섭(68) 씨도 얼마전 대구의 한 출판사에서 책을 냈다. 책 제목은 '지리산 주변 가이드'. 1982년부터 관광버스를 운전한 그는 이듬해부터 지리산 주변 10개 시·군의 자료를 틈틈이 모으고 정리해 20여 년 만에 책을 냈다.

"관광버스를 몰고 전국을 다니다보니 손님들에게 그 지역을 자세하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이후 각 지역의 내력은 물론 역사, 사적지 그리고 지역에 얽힌 노래 등 자료를 하나하나 모으고 정리하게 됐습니다."

지리산 주변 10개 시·군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담고 있는 '지리산 주변 가이드' 경우 책을 내기까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이 걸렸다. 송 씨는 "책 내기까지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자료를 찾으러 어느 지역을 찾았다가 하마터면 승용차가 강물에 빠질 뻔한 적도 있었지요. 경사길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어 길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지요."

책을 낸 후 송 씨를 보는 주변의 시선이 확 달라졌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책을 냈다는 사실에 주변 사람들이 놀라워한다."며 "관광학과 교수들이나 관광업계 사람들로부터 책의 내용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얘기했다. 앞으로도 '서해안고속도로 주변 가이드' 등 책을 한 권 한 권씩 낼 포부를 갖고 있다.

▲에세이집 낸 40대 가장!

대구 흥사단 등산대장인 김지욱(45) 씨는 최근 '우리 집도 파랑새다'를 냈다. 1부에는 자신의 생각, 2부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 3부는 사회활동을 하면서 느낀 단상을 담았다.

그는 "평소 신문이나 잡지에 사회 고발이나 의견 개진, 제안 등에 관한 투고를 쭉 해왔다."며 "나이가 들수록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내기로 마음먹었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쓴 글이 2천여 편에 이를 정도로 글 쓰기에 매달려온 그는 인터넷 카페에 자신의 글을 올려 반응을 살폈다. 네티즌들의 반응이 괜찮은 것을 보고, 책을 내는 데 용기를 얻었다.

김 씨는 "책을 낸 후 주변 사람들의 호응이 폭발적"이라고 귀띔했다.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와 생각을 담은 덕분에 "공감한다."는 독자들이 많다. 인터넷 서점에선 잔잔한 반향도 일으키고 있다.

그는 "평범한 소재일지라도 삶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면 읽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며 "제 책을 본 분들이 '나도 한번 책을 내야겠다.'는 이야기를 할 때 책을 낸 보람을 느낀다."고 얘기했다. "남을 따라하기보단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정직하게 글로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그 글에 진실이 담겨 있다면 읽은 이들의 가슴에 여운을 남길 수 있습니다." 올해 행복을 주제로 한 에세이집을 더 내고, 내년부터는 다른 방향으로 책을 내겠다는 게 김 씨의 목표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 저자가 되는 세가지 비결

한 가지 일에 취미로 몰두하거나, 직업상 전력투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분야에서 전문가 이상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많다.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적 지위 선상에는 놓여 있지 않더라도, 그 일에 마니아가 되어 책의 저자가 되기도 한다. 컴퓨터를 이용하는 출판 환경 덕분에 '나도 저자'를 꿈꾸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저자의 길에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첫째, 자신의 분야에 사랑과 열정을 쏟아야 한다. 관심이 커지는 만큼 이제까지와는 달리 보이는 부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둘째, 알려진 것과 다른 견해, 편리와 불편, 오류와 편견 등 자신의 일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답이 될 만한 자료들을 모은다. 셋째, 모인 자료들을 정리하고 자신의 지식체계에 질서를 부여하면서 기존의 해석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본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학자들이나 전문가 그룹에서 놓친 틈새를 메울 수 있는 행운을 발견하고, '나도 저자'의 반열에 오르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이때 주의할 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생각인지 인용인지 구분이 어려워지므로 자료를 수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분명히 하여 저작권에 위배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장호병 도서출판 북랜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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