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열린 책들)
새로운 제품 옆에 반듯하게 놓인 거대한 사용설명서는 오늘도 나를 주눅 들게 한다. 컵에 따를 때마다 뜨거운 물을 바닥에 흘리는 커피포트의 주둥이, 왁자지껄 박장대소에 사레들린 듯 뒤집어지며(게다가 자막까지 넣어가며!) 호들갑 떠는 그들만의 쇼 프로그램은 가끔 나를 생활에 질려버리게도 만든다.
서명해서 보내준 자신의 책에 대한 화답이 왜 없냐고 묻는 휴일 아침의 전화, 유치원생도 풀 수 있는 퍼즐판 같은 정치행로에서 우왕좌왕하는(제스처인가?) 높은 분들, 수없이 많은 코드를 입력했음에도 또 다시 전단계로 돌아가라는 차가운 메시지가 뜨는 기계는 슬프도록 또 나를 절망케 한다.
이럴 때 움베르토 에코 선생은 저 멀리 이탈리아에서 전언을 보내온다. 아니, 오래전에 보내온 것을 이제야 기억해 내는 것인가. 박미영 씨,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 바로 이런 것이오. 이 책을 통해 그는 때로는 익살꾼처럼 때로는 논객처럼 시시하고도 지리멸렬한 어리석음에 휩싸인 세상을 알록달록한 마술환등처럼 보이게 만든다.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170여 가지 대처방법, '빨간 모자' 동화를 다시 쓰는 방법, 서재에 장서가 많은 것을 정당화하는 방법 등등 책에 넘치도록 가득한 골계와 해학은 소설가이자 기호학자인 그의 지성과 범벅돼 문화적 경계를 한순간에 지우며 허리를 꺾고 웃게 만든다.
우리는 어떻게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까. 종이가 자꾸만 걸리는 프린터기, 30초 만에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흘러내리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말갛게 눈을 뜨고 자신의 틀에 맞춰 시시각각 바뀌는 윤리관을 피력하는 저 사람! 에코는 그 어리석음의 씨실과 날실을 한 걸음 물러서서 음미해보라고 권한다.
왜 기업의 수많은 고임금 브레인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일찍 알아채지 못하는가. 기온의 차이도 가늠 못하는 아이스크림 상인은? 정치적으로 반듯한 사람이 되는 것과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기어코 이 책이 나를 데굴 구르도록 만든 대목은 공공도서관의 체계를 세우는 방법에서였다. 결론은 훼손을 막기 위해 도서는 절대 대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박미영(시인· 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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