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움 20년간 담았어요"
"한국의 '한'을 담겠다."
외국인 입에서 '한(恨)'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은 생소했다. 20년간 한국을 카메라에 담아온 벨기에 사진작가 마크 드 프라이에(57) 씨. 그에게 한이 담긴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하자 인터넷 홈페이지(www.mdefraeye.be)에서 사진 한 장을 클릭했다.
누구나 보았음직한 시골 풍경이다. 시골 툇마루에 할아버지가 무심하게 앉아 있고, 밖을 향해 사내 아이가 막 문턱을 넘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밝은 표정의 아이 뒤로 어두운 그늘 속에 여자아이가 무표정하게 서 있다.
"이것이 한국의 모습"이라고 했다. 한국이 달려온 시간과 그 속에 어린 슬픔이다.
그는 안동과 영주 등을 방문하는 길에 대구에 들렀다. "양동마을의 한옥을 비롯해 서원과 사찰 등에서 고건축물과 풍경을 찍을 생각입니다." 이달 1일부터 9월 30일까지 3개월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자연과 문화, 환경 등 한국의 아름다움을 취재하게 된다.
프라이에 씨는 1990년 '한국 그 내면과 외면' 등 이제까지 5권의 한국 관련 사진집을 출간했다. 또 벨기에를 비롯해 독일·덴마크·핀란드 등 전 세계에서 5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서울에서도 세 차례 개인전을 연 바 있다. 1개월 전 문을 연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한국관에도 그의 작품이 걸려 있다.
이번이 12번째 한국방문. 그가 한국에 매료된 것은 1985년쯤이다. 당시 유럽인들의 관심은 중국과 일본에만 가 있었을 때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드디어 한국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에 대한 전시회가 잇따랐는데, 골동품과 그림 등을 보고 독특한 색감과 정서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는 한국의 아름다움으로 "잘 조화된 계급사회에서 나오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를 꼽았다. 한복과 갓, 여인의 전통 혼례복 등 양반과 일반 백성의 생활상에서 나오는 다양한 모습은 그가 이제까지 전혀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었다.
이후 꾸준히 한국을 담아 유럽에 알리는 '한국의 미' 전도사 역할을 해오고 있다. 영국 대영박물관에 한국을 알리는 사진도 그의 작품이다. 궁궐과 사찰 등 건축물뿐 아니라 시골 구석구석을 다녔다. 지리산 골짜기도 찾았다. 시골 툇마루 아이 사진도 경남 산청에서 찍은 것이다.
한국 아이 둘을 입양한 것도 한국에 대한 애정을 엿보게 한다. 아들(25)과 딸(24)은 이제 다 커 건축기사와 광고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흑백사진을 줄곧 찍은 그는 '흑과 백의 마술사'로 불린다. 카메라는 아직 필름을 고수하고 있다. 그것도 핫셀블라드 중형 카메라다.
지금껏 찍은 한국 이미지만도 수십만 컷에 달한다. 그의 작품에는 '시간'의 내러티브가 담겨 있다. 백두산 장백폭포를 찍은 사진도 그렇다. 느린 스피드로 찍어 장쾌한 폭포의 물줄기를 보며 "성산(Holly Mountain)에서 내려와 굴곡을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한국인의 삶과 같은 사진"이라고 했다.
프라이에 씨는 2009년 '한국의 해'에 맞춰 대형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20년간 이어온 '한국의 미 탐구'의 중간 결산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유럽에 알리는 일은 저에게 소명과 같은 일입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