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틈틈이 세계일주…대구 출신 김미정씨

입력 2007-07-09 07:04:04

지구촌이 내 발밑…여자, 혼자 떠나다

'서른', 누군가는 잔치는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가정을 꾸리고 이제 안온한 중년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모두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늘 발바닥에 풍선이 달려있는 기분이었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도록. 돌연 세계 여행을 떠난다고 선언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배낭을 쌌다. 2003년 6월의 일이다.

방송사 작가 김미정(33·대구 동구 신서동) 씨는 '내가 쓰는 대본보다 더 재미없고 시시한 삶에 체해서' 세계여행을 떠났다. 물론 준비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 1년 동안 여행책을 독파하고 여행경비를 모으는 등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세계일주 여행의 첫 출발지로 정한 러시아 공항에 내렸을 때, 계획이 별 필요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계획은 사라지고 그저 '즐기는' 여행만 남았을 뿐이다. 이렇게 시작된 김 씨의 세계여행일지는 중단됐다가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것도, 여자 혼자서….

이렇게 시작한 그의 여행은 러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로 이어지고 있다. 방송사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일하는 그는 여행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와 여행경비를 벌면서, 여행기를 담은 책을 쓰면서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서울에서 방송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2003년 6월, 그는 세계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러시아,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로 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터키에 멈췄다. 터키가 한국 시골동네처럼 정겹게 느껴진 그는, 그냥 터키에 눌러앉아버린 것이다.

8개월 동안 터키에서 현지인처럼 먹고 놀고 마시고 친구도 사귀었다. "스케줄이 빡빡한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답사'일 뿐이에요. 여행은 그곳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는 거예요. 몇 날 며칠은 어슬렁거려야 눈에 들어오죠. 저는 비슷비슷한 박물관이나 미술관보다는 남들이 가지 않는 마을에서 현지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놀아요."

그의 다음 목적지는 아프리카. 한국에 잠시 돌아와 숨을 고른 후 2005년 7월, 8개월 동안 다시 아프리카로 떠났다. 생경한 대륙 아프리카는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아프리카는 흔히 '전쟁과 기아의 검은 땅' '밀림이 우거진 대륙'쯤으로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그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더군요. 우리와 똑같이 꿈을 꾸고, 대학을 고민하고,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들과 만나면서 아프리카에는 시원한 콜라가 '부자'의 의미로 통한다. 콜라 몇 병 사주면서 한국의 '대부호'쯤으로 대접받기도 했고, 바나나를 하도 많이 먹어 아프리카에서 살이 10kg이나 찌기도 했다.

"한 달에 1달러도 만져보기 힘든 아프리카 말라이의 한 부족에게 수공예품 100만 원어치를 주문한 적이 있어요. 난리가 났죠. 그 마을은 공예품 만들 생각은 안하고 연일 파티만 벌였으니까요. 한 달 동안 술 사주고 파티하며 같이 놀았죠." 이런 의외성이야말로, 여행의 참된 맛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유럽의 독특한 숙소를 탐방하는 테마여행으로 한번 더 유럽을 찾았다. 지금 하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 끝나면 남미로 떠날 계획이다. 여행길에서 보낸 만 2년, '당연히' 장밋빛만은 아니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

"아프리카에서 택시강도를 만난 적이 있어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현금카드로 현금을 인출했을 뿐인데 정보가 새나가 돈이 몽땅 사라지기도 했고요. 새벽에 아무도 없는 낯선 도시의 기차역에 가이드북도 없이 내려야 할 때, 정말 난감하죠."

하지만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도와주는 사람을 만났다.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여행이 가능했다고. 여행을 하면서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 그의 독특한 여행기를 담은 책을 '미노'란 필명으로 세 권이나 발간했다.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 아프리카 여행기를 담은 '컬러풀 아프리카'에 이어 최근 '별 볼 일 있는 유럽 숙소 여행'을 발간했다.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는 7쇄까지 내면서 여행분야 베스트셀러에 꼽힐 정도. 여행 작가라는 이름을 하나 더 얻은 셈이다.

오랜 세계 여행이 그녀에게 선물한 것은 무엇일까. "게으름이에요. 여행 도중엔 마음껏 게을러도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으니까요. 게으름에 길들여졌다고나 할까. 남들이 사는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많이 알았어요. 예를 들면 골목길을 하염없이 걷는 것. 한국에서 바쁘게 살 때는 전혀 몰랐거든요."

또 세계 각국의 친구들도 여행이 준 선물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만난 게이 남자친구, 자원봉사를 하며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캐나다 친구 등이다. 행복에 대한 관점도 달라졌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아요. 한국에서 보고 배운 '정규 코스'가 아니라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는 것,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지 직접 봤다는 것이 큰 자산이에요."

그런데 궁금한 것 하나. 혼자 여행하려면 영어 실력은 필수가 아닐까. 김 씨는 "영어는 중학교 수준이면 된다."고 말했다. 그 역시 처음엔 영어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 수십 번 속으로 외운 뒤 겨우 말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3개월 정도 여행하다 보니 귀가 뚫렸고, 영어로 말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여자 혼자' 여행하는 데에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김 씨는 의외로 '공주병'이라고 말한다. 동양적 외모에 대한 신비감을 가진 외국남자들이 많아, 지나가는 곳마다 '뷰티풀'이란 말을 듣기 마련이란다. 프러포즈도 많이 받는다.

이런 쓸데없는 관심에서 해방되기 위해선 반지를 꼭 끼라는 것이 김 씨의 조언이다. 방송국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김 씨는 요즘도 아슬아슬하게 '±0'의 재정상태로 살아가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다. "재테크를 하는 순간 내 삶에 발목잡힐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자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지죠. 아프리카에는 자원봉사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일자리 못 구하면 거기서 즐겁게 봉사하며 살아가면 돼요. 여행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결심하는 순간이죠. 마음이 무거우면 즐길 수 없거든요? '즐길 준비 됐나?'라고 스스로에게 자문해보세요."

⊙ 김미정 씨의 세계여행 일지

▶ 2003년 6월~2004년 6월 러시아-유럽전역-터키

▶ 2005년 7월~2006년 2월 아프리카 12개국

▶ 2006년 10월~2007년 1월 유럽 전역

⊙ 일주일 내에 다녀올 만한 배낭여행지 추천 코스

▶태국=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는 전세계 배낭여행자의 천국이자 베이스캠프. 1970년대부터 형성된 이 배낭여행 거리는 값싼 숙소와 식당·여행사가 밀집해 있다. 특히 밤에는 포장마자 노점상들이 진을 치고 남들이 쓰다 판 여행가이드북을 파는 헌책방이 즐비하다. 공항에 내려 '카오산'을 외치면 현지인들이 버스를 안내해준다.

택시를 타도 멀지 않다.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여행사도 많아, 현지 여행 패키지를 판매한다. 다국적 배낭족들이 모여 현지를 보다 저렴하게 경험할 수 있다. '3일만 지나면 생존방식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 김 씨의 경험담이다.

▶베트남= 호찌민의 자유배낭 여행자 거리인 데탐 (De Tham). 이곳 역시 전 세계에서 여행 온 배낭여행족들로 넘쳐난다. 걸어서 5분 거리에 호찌민 최대 소매시장 벤탄 마켓,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호찌민 시내 중심가가 있으며 숙박비·식사비가 저렴한 편이다. 로컬 여행사를 이용하면 호찌민 및 인근 도시 코스여행이 가능하다. 다른 여행객들에게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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