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려움이 나를 둘러싸고 숨도 쉴 수 없는 답답함 속에서 불길이 나를 태워버리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내가, 마치 열매나무같이 젖어서 꽃이 피고 과실을 열게 하는 내가, 불길에 휩싸여 다 타버린 나무 등걸이 된 느낌이 올 때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잎사귀하나 내지 못하고 서있는 것조차 의미 없는 숯덩이가 되어, 아니 숯덩이라고 해도 다 타버려서 이제는 부서져 재만 되기를 기다리는 느낌이 들 때 있습니다. 그때 나는 자신이 도토리나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참나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동안 산을 움켜쥔 뿌리로 몸을 세워 푸른 산을 이루었으며, 가득한 잎사귀 뒤로 드리운 그늘 아래 숲 속 이끼를 자라게 하였고, 열심히 맺은 도토리는 산 속 벌레와 작은 짐승의 배를 불렸을 것이며, 잘려나간 가지는 누군가의 지팡이가 되거나 매운 회초리로, 혹은 웃음을 주는 윷가락으로 쓰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직은 더 잎을 내고 열매를 맺어야 할 것 같은데도 불타야 한다면, 그래 뭐 태워야겠죠. 그렇지만 태우고 태워서 다 타버린 것 같아도, 그것은 쓸데없이 젖어있는 미숙한 슬픔의 물기, 아직까지 어리광부리듯 틀어진 유아적 곁가지, 나무 등걸 모퉁이에 단단히 응어리진 마음 옹이, 잘못 감싸고 있는 거친 내 헛껍데기 모습 같은 것을 태워버린 것이라고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탄다면 이제는 자신을 위해, 자신의 슬픔과 노여움의 연기에 휩싸이지 않는 참나무 숯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무에게도 기침 나지 않게 하고, 매운 눈물 흘리지 않게 하면서, 강한 불꽃으로 발끝을 세우는 숯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다 타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조그만 불씨만 지펴준다면 진짜 누군가를 위해 탈, 유용하고 효율적인 땔거리가 되어 가는 참숯을 생각하는 겁니다.
한순간의 미혹을 넘기면 그래도 세상은 한 번쯤은 더 살아봐도 되는, 발갛게 달아 꽃불 피우는 아궁이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산다는 게 끊임없이 진화하는 참숯이 되는 과정이라면, 그래 물기를 태우며 더 단단히 나를 수렴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다시 나를 걸러내고 누구에게도 소중한 존재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서 내 마음의 아궁이에도 참숯불꽃을 지펴보는 겁니다. 누군가를 위해, 나의 소중한 무엇을 위해 물을 끓이고 구들을 데우는 겁니다.
조현열 아동문학가·신경외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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