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여행] 장맛비 멎은 틈타 반두 들이밀면 미꾸라지가 가득

입력 2007-07-05 15:57:27

장맛비가 초저녁부터 아랫채 양철지붕을 때렸다. 내일 날이 개여야 할 텐데... 속으로 빌었다. 내일 날만 개이면 붓 도랑에 가서 흐흐흐... 생각만 해도 즐겁다. 잠자리에 들어도 양철지붕 소리 때문인지, 설레는 마음 때문이지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어서어서 날이 밝아라. 그러면서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아침 햇살이 손가락 굵기 만한 구멍 뚫린 문풍지 사이로 제 몸을 헤집고 들어왔다. 눈이 번쩍 뜨였다. 순간 바깥을 내다보았다. 야호~~ 날이 거짓말처럼 개였다. 후다닥 이부자리를 둘둘 말아 구석에 처박아 놓고 마루로 나섰다. 아침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날이 서 있었다.

창고에서 파리통, 반두, 통발, 소쿠리를 챙겨들고 엄마의 아침 먹으란 소리도 무시한 채 현삼이네로 뛰어 갔다. 저 잠꾸러기 현삼이는 아직도 꿈인지 생신지 분간도 못하고 음냐음냐거리며 씨룩씨룩 잠만 자고 있었다.

"현삼아! 현삼아!" 몸을 건드리며 깨워도 꿈쩍도 없다.

"야~~ 일마야 고만 자고 일 나거라" 그래도 몸만 꼬고 만다.

"현삼아! 미꾸리 잡으러 가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수철에 튕긴 듯 현삼이가 벌떡 일어났다.

"야 이 자슥아~~ 웃 말에 정도는 벌써 한 소쿠리 잡았다"

"진짜가?" "그래~~일마야!" "알았다. 빨랑 가자."

허연 배를 벅벅 긁으며 현삼이가 앞장서고 그 뒤를 따랐다. 미꾸라지 잡는 데는 현삼이가 딱이었다.

장맛비로 논두렁의 콩들이 비리비리 고개들이 꺾여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런 황톳물이 넘실넘실 흐르는 개울로 내려섰다. 조금은 겁이 났다. 얼마나 깊을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버드나무의 긴 가지 하나를 꺾어 황톳물에다 찔러 보았다. 배꼽까지는 까딱없는 듯 했다. 두 놈은 옷을 홀라당 벗고 황톳물로 뛰어들었다.

도랑 옆 풀 섶에 반두를 들이 밀어 놓으면 현삼이는 구태여 멀리도 가서 발로 풀 섶을 들쑤시며 반두께로 고기를 몰아넣었다. 이렇게 개울가 풀 섶에다 반두를 벌려대고 한쪽발로 위에서부터 반두 쪽으로 풀 섶을 철벅철벅 밟아 쓸어내린 뒤 얼른 반두를 나꾸어 들면 붕어, 버들치, 미꾸라지 등이 꼬물꼬물 파다닥 거리며 잡혔다.

첫 반두질이 좋았다. 현삼이의 신들린 분탕질에 온 붓 도랑이 초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현삼이는 확실히 포인트를 알고 발질에 감각이 있었다. 우리는 그냥 대충 몇 번 푸덕푸덕거리며 고기를 모는데 반해 현삼이는 풀 섶에서 발을 계속 까불거리며 분탕질을 해대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었다. 누가 먼저 현삼이를 꼬드겨 붓 도랑에 데려가느냐 하는 것도 경쟁의 대상이었다.

느즈막히 아이들 서너 놈이 논둑을 타고 뛰어 온다. 우리는 개선장군처럼 전리품들을 종다래끼에 담아 뽐내 본다. 종다래끼는 짚으로 만들어 아가리가 좁고 밑이 넓으며 바닥은 네모꼴이고, 멍석이나 멱서리를 엮어서 짠 것이다. 아가리 양쪽에 끈을 달아 허리에 둘러 감아서 배에 달고 다녔다.

이제부터는 늦게 온 그 녀석들을 부려먹는 일만 남았다. 물고기 배를 따라. 애호박, 풋고추 따오고, 파 좀 뽑아 오너라. 집에 가서 냄비 들고 고추장 퍼오고 보리밥도 한 소쿠리 가져오라고 시키면 군소리 없이 쫓아들 간다. 고추장 듬뿍 풀어서 매운탕을 끓여 먹는 그 맛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폴짝거리며 매운탕으로 뛰어든 개구리도 기절할 정도로 맛났던 매운탕이 정말 그리워진다.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속칭 개실마을을 찾으면 마을 옆 논에서 미꾸라지 잡이가 가능하다. 도시서 자란 아이들은 처음부터 도랑에 들어가지 못한다. 시범으로 어른들이 반두를 들고 미꾸라지를 잡으면 그제서야 아이들은 하나둘 도랑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꺼림칙하던 마음도 잠시, 반두에 잡힌 미꾸라지를 손으로 만지며 미꾸라지 잡이에 금세 빠져 든다.

마을은 조선중엽 유학자이신 점필재 김종직(1431-1492)선생의 후손인 선산 김씨들이 모여사는 집성촌 마을로서 인근에 서당인 도연재 등 전통 한옥과 소나무 대나무 숲 등이 많은 데다 옥수수와 감자를 쪄먹는 맛도 괜찮다. 가족처럼 훈훈한 고향의 정을 느낄 수 있다. 낮이면 하천에서 대나무로 만든 뗏목을 타거나 밤에는 하천변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초롱초롱한 밤하늘 별을 세는 즐거움도 기다리고 있다. http://www.gaesil.net 연락처- 김병만 (011-810-5936)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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