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내신 난리

입력 2007-07-05 11:57:06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교육부와 대학 간에 빚어진 내신 난리는 한국 교육의 파행적인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내신 난리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없다. 학교 교육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다. 교육정상화니 대학 자율이니 내세우는 명분들이 그럴싸해도 학생들을 잘 가르치겠다는 대의에 벗어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일련의 내신 난리 과정에서 그런 징후를 다분히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사립대학들. 서울의 이른바 주요 사립대학들이 내신 상위 4등급을 모두 만점 처리하겠다고 치고 나오면서 내신 난리의 단초를 열었다. 그들은 지난해 내신 확대 방침에 호응했다. 싫다면 작년 또는 그 이전에 반대 의사를 명백히 했어야 했다. 난리를 벌이더라도 그 때 벌여서 지금은 확정된 방안에 이설이 없어야 했다. 정권의 레임덕 시기를 노렸던가. 다가오는 대입 날짜까지 계산에 넣었다면 지탄받아 마땅하다. 대입 날짜를 의식 않고 했다해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수험생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는 처사다.

둘째 교육부의 무모한 대응. 사립대의 반동에 강력한 대응을 경고하자 사립대들은 한풀 죽어 내신 무력화 기도를 포기하는 단계에 갔다. 그런데 교육부는 내친김에 기왕의 서울대 2등급 동점 처리 방침까지 용인할 수 없다고 강공을 폈다. 결국 내신 난리를 대란으로 몰아갔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학 총장 소집, 장광설은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학생 학부모의 딱한 사정은 전혀 개의치 않은 막무가내였다.

다음은 대학 총장'교수들, 그리고 각종 단체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신 강요를 거부하고 대학 자율까지 챙겨야 한다는 의지를 간단없이 내보였다. 여기에 국공립과 사립, 수도권대와 지방 대학의 이해가 다를 것이 없다. 간섭 없는 자율은 누구나 숙원이다. 학생을 더욱 잘 교육할 수 있다는 명분을 달고 있으나 학생들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교육부장관과 대학교육협의회 회장단과의 회동. 수도권 메이저 언론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대학들의 거센 내신 반발 움직임을 교육부가 당해낼 재간이 없다. 결국 2008학년도 내신 반영 50% 방침을 철회했다. 단계적으로 올려나가도록 한다는 체면치레로 끝냈다. 그리고 양자는 "정부는 대학의 자율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대학은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좋은 말이고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발표문이긴 해도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는 별로 감흥이 없다.

관심사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하고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이 양자간 합의를 존중하고 승인할 것인가 이다. 양자의 체면 유지 때문이 아니다. 또 한번 내신 문제가 요동을 치게 만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심사다.

내신은 선진국 대학 입시의 유효한 사정 방법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식으로 바뀌어 원래의 좋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신도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내신을 통해 공교육 정상화를 이루려고 욕심을 부리고 있다. 과외에 쏠린 학생들을 학교에 붙들어 매고 학교 등급화도 막겠다는 것이다. 무모한 발상이다. 현행 내신제도로 덕을 보는 쪽은 학력 수준이 낮은 학교들이다. 학력 수준이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학교와 교사의 노력 부족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내신 점수로 좋은 대학에 들어간들 학생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특목고 학생이 내신 점수를 노리고 수준 낮은 학교로 몰려갔을 때 기존의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가. 학교 현장의 노력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명문 공립고가 몰락하고 신흥 사립고가 명문으로 도약한 것을 평준화 결과라고만 말할 것인가.

내신이 죽음의 트라이앵글의 핵심이다. 트라이앵글을 해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 정책에 학생과 학부모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金才烈 논설위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