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가 '뜨고'있다.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등대가 손꼽혔다. 그러나 등대는 우리에게 '너무도 머나먼 당신'이었다. 교통 불편과 정확한 정보부재, 게다가 등대의 편의시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등대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변하고 있다.
서울 사람인 내가 보기에 경상도는 전국 최고의 등대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등대의 해양문화관광적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일들이다.
얼마 전에 영덕에 갔더니 해맞이공원이 있는 창포말에 영덕대게등대를 세워놓아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었다. 부산 영도등대도 씨앤씨(SEA & SEE) 갤러리를 개설해 연중 기획전시가 열리며 해양문화관광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에서도 해양친수공간조성과 등대의 해양문화관광 거점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미진하다. 등대는 그야말로 '블루 오션'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20세기 초반은 등대의 시대였다. 팔미도(1903) 거문도(1905) 영도(1906) 호미곶(1908) 어청도(1912) 마라도(1915) 등등…. 우리 바다의 의미있는 등대들은 대부분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03년부터 1910년대에 걸쳐 완성된다.
심지어 21세기에 세워진 영덕 창대말등대, 통영 문학등대, 해운대 엑스포등대에 이르는 조형등대에 이르기까지 등대의 풍경을 목전에서 본다. 그런데 등대 관광자원화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접근성이다.
팔미도·부도·선미도 같은 경기 서해의 등대들은 모두 무인도라 접근 자체가 어렵다.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곳이 동해안이다. 동해북부권 속초등대에는 연간 수십 만 명이 몰리고 있으며, 대진등대도 뜨고 있다. 반면에 강릉의 북쪽해변과 다르게 울진·영덕·포항·경주·울산 쪽으로 내려갈수록 수도권관광객들은 쉽게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 경상도 해안만큼 접근성이 뛰어난 등대들이 없다. 울진의 죽변·후포·포항의 호미곶등대와 국립등대박물관, 경주 감포의 송대말, 울산의 울기와 간절곶, 그리고 부산의 영도·오륙도·가덕도등대, 나아가서 서이말등대, 심지어 통영에 근년에 새로 만든 일명 연필등대(통영문학등대)에 이르기까지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등대들이 즐비하다.
KTX를 타고 대구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가도 포항에 곧바로 닿는다. 부산권역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번에 해양문화재단 주관으로 7, 8월에 서울 사람들을 이끌고 등대여행을 나서게 됐는데 선뜻 경상도지역을 선택했다.
강원도등대는 당일치기는 좋지만 1박을 하기에는 너무 약소한 반면, 경상도 해변 쪽은 1박 일정이라면 풍부한 등대자원 덕분에 제대로 일정을 잡을 만하다. 전국의 등대는 물론이고 세계의 등대를 두루 둘러본 나의 소견으로는 경상도 해변의 등대자원은 대단하다. 그러나 아직 잠재적 가치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호미곶등대를 비롯해 대부분의 명품등대들은 일본인들이 만든 것이다. 그래서 등대는 '제국의 불빛'이었다. 그러나 등대는 이제는 엄연히 '근대문화유산'의 총아로 다가오고 있다.
오륙도등대조차도 용호동선착장에서 불과 십여 분이면 당도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머나먼 섬이고 배편도 없는 섬으로 간주한다. 홍보가 전혀 안된 탓이다. 지자체의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무언가 지역 홍보와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무진 애를 쓰기는 하는 것 같은데 정작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등대의 '보물'적 가치는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실 등대는 건축사의 과제로 처음 콘크리트가 실험된 곳이기도 하다. 100년짜리 등대들은 장중하게 쌓아올린 예술품이다. 벽돌로만 쌓아올린 호미곶등대의 장엄함, 유럽풍의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가덕도등대, 시원시원한 경관을 자랑하는 오륙도와 영도·울기·송대말등대 등의 풍광을 생각해보자.
금년 여름부터는 우리들의 여행 목록에 반드시 '등대'를 넣자. 그리고 등대의 역사성과 낭만성 그리고 풍광의 아름다움을 돌아오는 길에 선물로 받아오자. 무엇보다 경상도 해변에 가면 뛰어난 등대들이 널려 있으니 그곳으로 갈 일이다.
가령 부산 감만부두에는 대한제국기에 완성된 부산 최고의 제뢰등대가 잠들 듯 숨어있으나 부산사람들조차 대다수가 모르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에 관한 우리시대의 '얕음'을 어쩌랴. 이런식으로라도 '계몽적'으로 등대행을 강권하고 나설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주강현 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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