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진 우리 옛이야기를 잠시 떠올려봅시다.
한 농부가 산길에서 빨간 부채와 파란 부채 한 쌍을 발견합니다. 하나는 코를 늘이고 또 하나는 코를 줄이는, 참 신기한 요술부채였지요. 그러나 농부는 제 코에 장난치는 것으로 혼자만의 재미를 느끼는 것 외에 도대체 부채가 무슨 쓸모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 코를 갖고 노는 일에 싫증이 나서 마을의 다른 사람 코에 몰래 장난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농부는 멀쩡한 남의 코를 슬쩍 늘인 후 다시 줄여주는 방법으로 떼돈을 벌게 되지요. 그런 엉터리 방법으로 부채의 효용을 알게 된 농부는 어느 날 한껏 부채질을 하다가(날이 몹시 더워서 바람을 일으키는 원래 부채의 효능을 즐기려다 그렇다고 쳐둡시다) 하늘 끝까지 코를 늘여서 하늘나라 마당을 뚫어버립니다.
뒤늦게 코를 줄여보지만, 농부는 긴 코가 하늘 기둥에 묶여서 하늘로 끌려 올라가다가 마침내 땅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요, 도대체 코만 늘였다 줄일 수밖에 없는 부채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마는, 의외로 사람들은 살아가는 산길에서 저마다의 부채를 주워 가지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코로 비유되는 자신만의 지식과 정보로 자존심을 내세우고 가치를 높여서 이름을 드러내고 나아가 어떤 부수적 이득을 보려 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야 이런 요술부채로 기껏 제 코 석 자와 다른 이들의 작은 코만 키웠다 줄이면서 조금 재미 볼 정도로 그치지만, 보다 영향력이 큰 이 나라 위정자나 일부 지식인들은 이 부채를 잡았다 하면 제 코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어코 멀쩡한 국민들의 코를 늘였다 줄였다 하며 생색을 내고 무슨 큰 이익을 얻을 생각만 하는 듯합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는 그것도 모자라 최근엔 하늘을 뚫을 듯 솟구치는 자신의 코에만 신경 쓰는 깜냥이니(더워서 땀 좀 식히느라 부채질한 것밖에 없다고 강변하겠지만), 그저 어리석은 백성들은 하늘기둥에 코가 꿰였다 툭 풀어지며 떨어지는 추락감을 미리 대신 느끼느라고 안절부절못합니다.
뭐, 거창한 이야기할 것 없이 제 자신부터 반성해야겠습니다. 이웃들에게 미치는 내 말과 행동과 직업적 행위가 어쩌면 멀쩡한 남의 코를 키웠다 줄이는 도깨비부채 효과는 아닌지, 이런 글 쓰며 지면을 어지럽히는 이 순간도 그저 별것 없는 생각이나 느낌을 부풀려 이웃을 집적거리고 하늘에까지 닿고자 하는 허황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닌지….
조현열 아동문학가·신경정신과 전문의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트럼프, 중동상황으로 조기 귀국"…한미정상회담 불발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