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워. 이런 일은 이제 지긋지긋 해."
월급쟁이들이 한두 번쯤 해보는 말이다. '지겹다. 이렇게 돈벌이도 안되고, 무의미한 일은 더 이상 못해먹겠다.'고 말하는 동료에게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십중팔구, '인생이 그렇지 뭐. 소주나 한잔할까?' 일 것이다.
이 산문집의 저자 마루야마 겐지는 어떤 회사의 통신과에 텔렉스 오퍼레이터로 근무한 적이 있다. 그가 어느 날 '지겹다.'고 말하자, 선배가 술을 사주며 달래기는커녕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럼 자네한테 무슨 다른 재주라도 있단 말이야?"
마루야마 겐지는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생각해보니 자신에게 아무런 재주도 없었던 것이다.
이른바 '탈(脫)샐러리맨'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장사에 성공하는 경우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은 왜일까? 마루야마는 이를 '외관'을 지나치게 따지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장사'란 말이 듣기 싫다면 '사업'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장사를 하든 사업을 하든 조직 속에 있던 사람이 조직을 벗어난다는 것은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게문을 열고 닫고, 청소를 하고, 물건을 사들이고 팔고, 손님을 맞이하고, 인사하고, 포장하고 배달까지 말이다.
그런 저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다만 '샐러리맨 세계가 싫어서, 좀 더 세련된 생활을 하고 싶어서, 좀 더 많이 벌고 싶어서, 잔소리 안 듣고 편해지고 싶어서' 등의 동기로 시작하면 폭삭 망하기 십상이다, 는 것이 마루야마의 생각이다.
이 책 '소설가의 각오'는 소설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어떤 소설을, 어떤 각오로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나 제목을 '탈 샐러리맨의 각오'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다. 샐러리맨 생활을 떠나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설가들이 혼자 고독 속에 살아야 하듯, 샐러리맨 역시 조직을 벗어나는 순간 혼자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마루야마는 조직을 벗어나려는 샐러리맨에게 한껏 겁을 주는 한편 조직을 떠나 대양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학생들에게는 아직 몇 년 살아보지도 않고 인생을 지레짐작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이제 막 인생이 시작됐을 뿐인데, 고작 집과 학과 사이를 몇 년 왔다갔다한 정도로 모든 걸 다 알았다거나, 모든 게 결정된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나 못 하는 학생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린 학생들이 아무리 우겨봐야 그들이 접해본 인간이라고는 반 친구와 부모, 선생 정도라는 얘기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그들의 책임대로 '공부가 이 세상의 전부'라고 말하지만, 마루야마는 결코 '학교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고 말한다. 더구나 이걸 못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이 산문집은 마루야마 본인의 삶을 통해 소설가 지망생들과 소설가들이 어떤 태도로 살아야하고, 글을 써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일본작가가 일본을 대상으로 쓴 책인데, 우리나라 현실과 다를 게 없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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