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이고 모자를 푹 눌러 쓴 건장한 20대 청년 뒤에 자신감이 넘치는 다부진 체구의 중년 신사가 서 있었다.
"머리가 빠져서요. 고등학교 때부터 탈모가 생겼는데 공부도 안된다나요. 그래서 지금 삼수를 하는데 영 신통찮아요."
모자 안에 감추어진 그의 머리카락은 수줍게 몇 가닥이 얌전하게 두피위에 올려져 있다. 범발성 원형탈모였다. 원형탈모는 자가 면역질환으로 갑상선등의 전신질환과 관련 있는 경우도 있고 스트레스라고 총칭되는 심리적, 육체적 과부화 상태에서 잘 발생하며 재발을 잘 한다. 진료가 진행되는 동안 아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바리톤 가수처럼 풍부한 성량을 가진 아버지가 일목요연하게 지금까지의 경과를 설명하는데 아들에 대해 불편한 심기가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는 여러모로 자신에 못 미치는 심약하고 부족한 아들이 늘 못마땅 하다. 자신은 명문 대학 출신에 자수성가하여 지역에서는 몇 번째 가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데 대학하나 변변하게 못 들어가서 빌빌 거리고 그것도 모자라 남들 다 멀쩡한 머리카락 마저 말썽이니 얼마나 못마땅하겠는가? 그 머리카락이 당당한 아버지 밑에 2% 부족한 아들의 소심한 반란일 수 도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정녕 모르리라.
일단 실망하지 말고 끈기를 가지고 치료에 임해야 된다고 단단히 다짐 받았다. "원장님, 보톡스를 마음에 놓는 방법은 없나요? 이 녀석의 일그러진 마음을 펴는 방법은 없나요?" 진료가 마무리 되어 갈 무렵 당당한 아버지는 세련된 위트 한마디를 남겼다.
아! 그렇다. 근육의 구김만 펼 것이 아니라 마음의 일그러짐도 펼 수 있는 보톡스가 있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수월할까? 사람들이 일그러지고 주름 진 마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받는데... 그리고 이 부자 중에 보톡스를 시술 받을 사람은 과연 아들 일까? 자신의 욕심과 세상 인 가치에 얽매여 있는 그대로의 아들을 보지 못하고 끊임없이 채찍질 해대는 아버지는 보톡스가 필요 없을까?
정현주 (고운미 피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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