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레터)양자역학과 조명산업

입력 2007-06-26 07:17:03

현대 물리학을 대표하는 2개의 이론을 꼽으라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말할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둘 다 난해하지만 상대성 이론은 의외로 익숙하다. 발표한 사람이 너무나 유명한 아인슈타인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영화나 책을 통해 그의 이름을 들어왔기에 상대성 이론의 내용은 몰라도 낯설지가 않은 것이다.

이에 비하면 양자역학은 상당히 생소하다. 우선 양자라는 개념부터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양자란 개념은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물체가 방출하는 복사에너지에 대하여 '복사에너지는 정수배로 변화한다.'는 개념을 가설로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발표할 당시 플랑크 자신도 양자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고 한다.

양자란 용어를 설명하기에 앞서 복사란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자. 열은 항상 고온에서 저온으로 흐르는데 열이 전달되는 방식은 전도, 대류, 복사 등 세 가지가 있다. 전도란 고체와 같이 매질이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 분자의 열운동이 인근 분자와의 충돌을 통해서 전해지는 방식이고, 대류란 액체나 기체처럼 매질이 움직일 수 있는 경우 온도 증가에 따른 밀도의 변화에 의해 열이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그럼 매질이 없는 경우는 어떻게 열이 전달될까? 이 경우 열은 전자기파의 형태로 전달된다. 이것을 복사라 한다.

물체는 자신의 온도에 따라 빛 혹은 전자기파의 형태로 열을 내놓는데 물체가 내놓는 전체 복사에너지는 물체의 절대온도 4제곱에 비례한다.(슈테판-볼츠만 법칙) 어떤 물체보다 절대온도가 2배 높은 물체는 방출하는 복사에너지가 16배가 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온도가 높은 물체를 뜨겁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도가 낮을 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던 물체가 온도가 높아지면서 붉은 색, 흰색, 푸른 색으로 변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물체가 내놓는 빛의 파장 변화 때문이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물체가 내놓는 에너지의 양은 많아지고, 방출하는 복사에너지의 파장이 점점 짧은 영역-적외선에서 붉은 색으로 그리고 푸른색으로-까지 범위가 넓어진다. 온도가 낮을 때는 인간이 볼 수 없는 적외선 영역의 전자기파를 방출하지만 온도가 올라가면 적외선보다 파장이 짧은 가시광선을 방출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우리는 붉은빛을 볼 수 있으며 온도가 올라갈수록 물체가 내놓는 빛의 파장이 점점 짧은 쪽으로 치우치면서 푸른색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를 빈의 변이법칙이라고 한다.

온도가 낮은 물체도 복사에너지를 주위에 방출하고 있지만 우리가 볼 수 없는 파장의 빛, 즉 적외선을 내놓는다. 따라서 주위는 어두워도 방출하는 에너지만큼의 열은 느낄 수 있다. 우리 몸에서도 체온에 해당하는 적외선을 내놓기 때문에 가까이했을 때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밤에 사냥하는 동물들은 적외선을 감각할 수 있으므로 캄캄한 밤에도 활동할 수 있다.

그럼 양자란 무엇일까? 물질을 계속 쪼개면 결국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단위 즉 원자가 된다.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계속 나누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가장 작은 양이 나오는데 이를 에너지의 양자라고 한다. 양자란 물리량에서 가장 작은 최소값을 의미한다. 에너지는 양자의 정수배로만 존재하는데 그 사이의 값이 존재하지 않는 불연속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높은 곳에 있던 물체가 떨어진다고 가정할 때 낙하하는 동안 물체의 속도가 증가하므로 운동에너지도 커진다. 이 때 우리는 낙하하는 물체의 운동이 연속적이라고 느끼지만 사과의 운동에너지는 연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에너지를 가지면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감각하고 있는 현실 세계-물론 양자 역학은 미시 세계에서만 존재한다-와 너무나 다른 내용이어서 플랑크 자신도 자신의 이론에 담겨있는 에너지의 불연속성 개념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예를 보자. 우리나라의 인구 증가 숫자가 분당 2.3명이라고 할 때, 이 말은 1분에 우리나라의 인구가 2.3명씩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2.3명은 어떻게 생겼을까. 2.3명은 계산상으로 나올 수 있는 값이지만 인구수는 0.3과 같은 소수로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인구수는 정수로밖에는 존재할 수 없고 그 정수 사이는 비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과학에 이르러 우리가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세계에서는 양자의 개념이 일반화되어 모든 물리량이 최소량의 배수배로만 일어난다고 보고 있으며 그 값들은 불연속성을 갖는다.

그런데 현대물리학을 대표하는 양자란 개념이 독일에서 발표된 배경을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조명 산업과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막스 플랑크가 독일 물리학회에서 새로운 양자 가설을 발표할 무렵 독일에서는 우수한 인력들이 정부의 풍부한 재정 지원과 좋은 환경 속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급성장하던 독일의 조명산업계는 필라멘트에서 방출되는 빛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원했고, 실력 있는 물리학자들은 조명산업계의 이러한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복사현상에 대해 면밀한 실험을 행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의 결과로 막스 플랑크는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복사 관계식을 찾게 된 것이다. 'MADE IN GERMANY'라는 조명은 이렇듯 과학을 통해 이루어졌고 현대 물리학의 한 지평을 여는 계기를 만들었다.

과학은 결국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사례다. 우리나라의 과학도 좋은 환경, 정부의 지원, 우수한 과학자들이 어우러져야만 'MADE IN KOREA'의 화려한 빛을 발할 수 있다. 이공계 위기의 책임을 누가 지느냐를 따질 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분발이 요구되는 시기다.

차정록(차선생 과학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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