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제가 제사를 지낼게요

입력 2007-06-26 07:59:15

얘야, 어제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슬픈 날 중의 하나인 6·25 전쟁이 일어났던 날이로구나. 그러고 보니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구나.

몇 해 전, 어느 작은 기차역에서 일하던 한 늙은 역무원이 선로에 쓰러진 술 취한 사람을 구해내고 자신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숨을 거둔 일이 있었단다.

이 소식은 곧 전국에 널리 알려졌지.

친척이 없어서인지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한 아주머니가 달려오더니 엉엉 울며 제문을 읽어내려 갔단다.

그 편지를 들은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눈물을 줄줄 흘렸단다.

정남북 아저씨께

먼 산에서 뻐꾹새가 아기를 잃었는지 뻐꾹뻐꾹 울어대는 초여름입니다.

벌써 40여 년 전 일이라 아저씨는 저를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동안 한시도 아저씨의 이름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 무렵 열 살밖에 되지 않은 단발머리 초등학생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아버지는 월남 전쟁에 참전하셨다가 그만 전사하시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온갖 힘든 일을 다하시며 저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멀리 바닷가에 가셔서 마른 미역이나 멸치 등을 사와서 팔기도 하셨습니다.

그 해 초겨울 어느 날, 물건을 하러 가신 어머니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으셔서 저는 어머니 마중을 나갔습니다. 저는 개찰구 앞에서 기다리다 못해 기차 안으로 들어가 찾아보았지요. 그때 그만 기차가 움직이고 말았습니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저는 그만 배도 고프고 힘도 빠져서 구석에 쪼그린 채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내가 눈을 떴을 때에는 전혀 낯선 곳에 와 있었습니다. 저는 어둠 속에서 소리도 질러보고, 무서운 짐승처럼 우뚝 서 있는 기차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기차역이었던지 쥐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바람은 쌩쌩 불어와 몹시 추웠습니다.

나는 다시 기차에 오르려고 난간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손잡이는 매우 차가웠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미끄러져 머리를 부딪히는 바람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지요.

눈을 떴을 때에는 역사무소 숙직실이었고, 이튿날 대낮이었습니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사람의 가슴에 '정남북'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아저씨께서는 6·25 전쟁통에 잃어버린 가족을 찾으시려고 일부러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기차역에서 일을 하신다고 하셨지요.

저는 아저씨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몇 번이나 철도청으로 감사 편지를 보내었습니만 연락이 닿지 않다가 며칠 전에야 겨우 신문으로 아저씨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저씨는 선로로 굴러 떨어진 술 취한 사람도 구해내려다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지요.

아저씨, 가족도 못 찾으셨는데 돌아가시게 되어 얼마나 원통하십니까!

저는 이곳으로 달려오면서 서너 시간 내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제가 아저씨의 딸이 되어 제사를 올리기로 했습니다. 저는 또 한 분의 아버지를 더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 놓으시고 부디 편히 잠드십시오.

새로운 딸 숙이 올림

심후섭(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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