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전신마비 딸 간호하는 이춘자씨

입력 2007-06-20 09:16:52

목으로 넘어간 나사에 기도막혀…어린 딸은 4년째 못 일어나고…

▲ 전신마비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4년째 투병중인 경미에게 쌍둥이 동생 경선(왼쪽)이가 어린이집에서 그려온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은 쌍둥이 어머니 이춘자 씨.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전신마비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4년째 투병중인 경미에게 쌍둥이 동생 경선(왼쪽)이가 어린이집에서 그려온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은 쌍둥이 어머니 이춘자 씨.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마흔의 쌍둥이 엄마, 이춘자 씨. 몸에 병원 냄새가 배어 있었다. 이마, 목, 팔을 쉴 틈 없이 가볍게 긁적였다. 얼마나 긁었는지 피딱지가 앉은 곳도 더러 눈에 띄었다. 먼지 때문인지 요즘 피부에 두드러기가 난다고 했다. 8인실 병동의 환자용 침대 밑에 골프공 만한 바퀴가 달린 간이침대가 이 씨의 거처다. 그렇게 산 지 벌써 3년이 됐다. 침대 주위로 둘러쳐진 환자보호용 칸막이 위에는 빨래와 옷가지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고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냄비, 숟가락, 젓가락 등 가재 도구와 아이들이 가지고 놀 크레파스, 동화책 등도 보였다. 부엌과 아이들의 작은 방 한쪽에 질서정연하게 놓여있어야 할 것들이 병실 한쪽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 씨는 다크서클이 문신처럼 새겨진 작은 두 눈을 감았다 떴다 했다. 오른쪽 눈에 눈물이 괴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며 이 씨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4년 전이네요. 올해 6세가 된 경미와 경선이는 이란성쌍둥이였답니다. 그때는 남편이 있었고 우리 네 식구는 대구 달서구 감삼동의 12평 남짓한 전세방에서 어렵지만 웃으며 살았습니다. 남편은 성서공단에서 일을 했고 저는 살림을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마 가을이었을 겁니다. 남편은 출근을 했고 저는 설거지와 빨래를 끝내고 잠시 아이들 곁에서 눈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깊은 잠을 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누워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가 들리지 않았다 할 정도였습니다. 한참 조용해서 눈을 떴더니 경미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손톱 만한 나사를 입에 물고 있는 거였어요. 그걸 빼려고 경미의 목을 뒤로 젖혔는데 거짓말같이 목으로 넘어갔어요. 흔적도 없이. 급한 마음에 전화기를 들었지만 버튼 누르기도 쉽지 않았고, 아이의 두 눈을 보니 까만 동공은 간데없이 흰자위만….

병원에서는 나사가 기도로 넘어갔다고 했다. 나사가 기도를 막으면서 경미의 뇌는 산소를 공급받을 수 없었다. 흡입기로 나사를 빼내는 수술이 이어졌다. 하지만 불과 몇 분만에, 이 씨가 깜빡한 그 찰나에 경미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경미가 전신마비로 병원신세를 지게 된 후 많은 것이 변했다. 남편은 술로 날을 지새우다 모든 것을 책임지라며 헤어지자고 했다. 이 씨도 그편이 낫겠다며 도장을 찍고 그 길로 기초생활수급권자 신청을 했다. 지난해 경미를 장애1급으로 신청해 매달 50만 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아 병원비로 썼다.

지난 4년 동안, 단 한 번도 병원 밖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고 아이 곁을 떠날 용기도 없었거든요. 간이침대를 빼내면 무릎을 구부려 경선이와 나란히 잠을 청할 수 있어요. 경선이는 병원 근처 어린이집에서 종일 놀다가 병원으로 오는데, 그려온 그림이랑 글씨책을 언니 보라며 얼굴 앞으로 가져다 대지요. 클래식 음악이 좋다고 해서 MP3 플레이어를 샀는데 위세척을 하다 물에 빠뜨려 들려줄 수가 없네요. 다가오는 8월 12일이 경미 생일인데….

19일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만난 이 씨는 침도 삼키지 못해 입과 코로 흘려보내는 경미를 연방 닦아내고 있었다. 초점 없는 두 눈동자가 천장을 향하고 있는데도 자신을 알아보고 웃는다고 했다. 병원비 400만 원이 밀렸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야만 숨을 쉴 수 있는 딸아이가 자기 때문에 저 지경이 됐다며 이 씨는 또 왼쪽 가슴을 때렸다. 까만 민소매 아래로 그의 가슴에서 시퍼런 멍자국을 본 것 같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