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대구 파티마병원 장례식장. 고 전종민 경위는 까만 액자 속에서 밝게 웃고 있었다.
"여보, 금방 다녀올 테니 된장찌개 준비해 줘." 전 경위가 아내 서영옥(40) 씨에게 건넨 마지막 말은 유언 아닌 유언이 됐다. 서 씨는 사고가 난 그 시각, 집에서 두부를 썰고 있었다고 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거라고 그 뜨거운 보닛 위에 올라갔느냐."며 전 경위의 외삼촌은 울었다. "그 녀석이 말이오, 어릴 때 공놀이를 워낙 좋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문에 공을 뻥뻥 찼소. 내는 조카가 축구선수가 될지 알았구먼. 근데 이게 무슨 꼴이오. 죽었는데, 지 가족 다 남기고 혼자 떴는데 도대체 해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잖소." 아무리 삼켜도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까만색 조의에 하얀 리본을 맨 미망인 서 씨는 멍한 모습으로 말문을 열었다. "제 남편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한 것 빼고는 만점이었지요. 아는 사람들에게 그 많은 보증을 서고 돈을 빌려주고, 방 두 칸의 전세방도 궁궐처럼 여기며 살자던 사람이었어요. 어느 날 점점 커가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집에서 자취생처럼 잠만 잘 수밖에 없는 형사 일을 그만둬야겠다며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서현수 동부경찰서장이 조문을 하고 유족들을 향해 절을 하자 잠시 멈췄던 비통함이 여기저기서 또 터졌다. "밝고 유쾌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제가 끝까지 책임지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서 서장의 위로에 전 경위의 모친 문순자(70) 씨가 손녀를 꼭 안았다. 둘째딸 은주(9)도 "제가요, 아빠한테 너무 무뚝뚝하게 굴었어요. 아빠는 형사인데 형사는 아이들이랑 놀아 줄 시간도 없냐고 막 화를 냈거든요."라며 울먹였다.
오후 4시쯤 전 경위가 입고 있던 정복과 모자, 옥조근정훈장, 경위 임명장이 장례식장에 들어오자 눈물바다가 됐다. 이날 빈소를 찾았던 이택순 경찰청장도 충혈된 모습으로 "전 경위를 쉽게 놓아주지 못하겠지만 꿋꿋하게 살아달라."며 가족들을 위로했다.
"지난달 아빠가 수학여행 잘 다녀오라며 분홍색 티와 청바지를 사줬어요. 제가 고르니까 너는 뭘 입어도 모델 같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줬는데…." 큰딸 은미(15·가명)는 까만 상복 안에 그때 아빠가 사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을 전 경위는 그저 액자 속에서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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