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담요를 위쪽으로 끌어당겨 덮으면 발끝이 서운하고 발만 생각해서 밑으로 내려 덮으면 어깨가 서늘해져 이래저래 잠만 설치게 된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무릎을 구부리고 누워 단잠을 즐긴다." 제 욕심만 생각하는 이기적 독선보다 양보와 中庸(중용)의 화합이 서로를 살리는 길임을 깨우치는 비유다.
지금 우리 주변엔 짧은 담요 한 장을 놓고 서로 제 발과 제 어깨를 덮으려 제 쪽으로만 끌어당기느라 잠을 설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담요가 찢어질망정 무릎을 조금 구부려서라도 함께 단잠을 자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죽어라고 제 쪽으로만 잡아당긴다. '단잠'이라는 상생의 公益(공익)이 생겨날 수가 없다.
어제 저녁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인과의 TV토론만 해도 '짧은 담요 당기기'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날 토론은 애당초 서로 어깨와 발끝을 덮어야 한다는 대립된 주관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이쪽저쪽 잠만 설친 듯한 찜찜한 토론이 될 수밖에 없었던 토론이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노 대통령은 "대통령에 관한 언론보도 건수가 6공 때나 YS의 문민정부 때보다 DJ정부 때 2배 가까이 많았고 참여정부 때는 DJ정부 때보다 또 더 많았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편향적으로 이번 정부만 두드러지게 더 많이 비판한 것 아니냐는 불만으로 들렸다. 보수 언론이 권력화된 힘으로 어깨 쪽으로만 끌어 덮는 바람에 나는 시린 발끝 대접만 받았으니 억울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언론 쪽은 참여정부의 발끝이 시리게 된 것이 언론권력의 힘이 세서가 아니라 기삿거리가 될 만한 '부적절한 말씀과 정책'을 딴 정부 때보다 몇 배 이상 쏟아냈으니 당연히 보도건수가 많을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시각이다.
정권의 문제점(발끝)을 덮어주는 것보다 국민의 알 권리나 정보접근자유(어깨)를 더 보호하자는 생각 같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언론과 정권의 관계는 짧은 담요를 덮어야할 때 무릎을 구부려 함께 단잠을 자는 관계가 되기 어려운 숙명적 관계다. 언론이 정권을 위해 붓을 구부려 거짓을 덮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온몸을 온전히 바르게 뻗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함께 단잠을 자려면 언론이 구부리기보다 권력 쪽이 부패나 무능으로 발 밑에 길게 늘어져 있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쉽다.
어젯밤의 토론을 보고 오늘부터 이 정권과 언론이 무릎 굽히고 단잠을 자는 밀월관계가 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발끝 시리다는 쪽에서 시작한 언론과의 전쟁은 대선 때까지 더욱 더 치열해질 것이고 '내 발끝이 따뜻해질 때까지 어디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수그러지지 않는 한 언론'정권 어느 쪽도 단잠 자기는 글렀다.
국민들의 단잠을 설치게 하는 獨善(독선)의 다툼은 교육부와 대학 간의 입시제도 싸움에서도 마찬가지다. 제도에 대한 합리적 합의 모색 대신 국민세금(예산)으로 대학의 자율권을 목 조르는 것은 '내 어깨가 시리니 네 발끝을 잘라라'는 식의 폭력적 공권력이다. 다수 조합원들이 반대하는 불법파업을 고집하는 현대차 노조도 발끝만 생각하는 이기적 독선으로 기업 생산성과 경쟁력'노동자의 실익 모두 다 잃고 있는 경우다. 6'15민족 단합대회가 단합 아닌 분열의 잔치가 돼버린 것 또한 어깨와 발을 함께 아울러 생각하지 못하는 이념의 狂氣(광기)가 낳은 어리석음 탓이다.
광기 서린 이념, '傲氣(오기)'와 독선, 폭력적 공권력으로는 결코 짧은 담요를 온전히 덮을 수 없다. 세상일엔 어차피 짧은 담요처럼 약간씩의 입장 차이와 인식의 간격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명한 정부, 깨어있는 국민은 화합과 중용이라는 '짧은 담요 잘 덮기'의 지혜로 그 갈등의 간격을 줄일 줄 안다. 우리 다함께 조금씩 구부려 어깨와 발끝을 같이 덮고 잘 줄 아는 깬 국민, 잘난 정부가 돼보자.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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