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宮中史(궁중사)는 파란만장 그 자체다. 그것이 문학과 영화, 연극 등 예술의 영원한 소재가 되는 것도 그 속에 인간사의 극단적 明暗(명암)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18세기 우리 궁중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惠慶宮 洪氏(혜경궁 홍 씨:1735~1815)의 '閑中錄(한중록)'은 조선조 正祖(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嬪(빈)이었던 홍 씨의 자전적 회고록이다. 영의정 홍봉한의 딸로 열살에 궁중에 들어왔던 홍 씨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냈다. 노론인 친정과 소론의 비호를 받는 남편 사도세자(1735~1762), 그 와중에서 시아버지 英祖(영조:1694~1776)와 사도세자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깊은 골…. 특히 사도세자가 영조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참변은 더할 수 없는 痛恨(통한)을 남겨주었으며, 그 애달픈 심정은 '한중록'을 통해 전해져 오고 있다.
悲運(비운)의 주인공 사도세자. 그가 장인 홍봉한에게 보낸 편지들이 발견돼 화제다. 권두한 서울대 교수가 최근 일본 도쿄(東京)대에서 촬영한 사진 자료에 나타난 한문 편지에는 인간 사도세자의 고민과 심적 고통 등이 절절히 배어있다. 1753년 또는 1754년 어느 날의 편지글에는 '나는 본디 남모르는 울화의 증세가 있는데다…(중략) 임금을 모시고 나오니, 열은 높고 울증은 극도로 달해 답답하기가 미칠듯 합니다'라며 '이런 증세는 의관과 함께 말할 수 없으니 약을 지어 남몰래 보내주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호소했다. 미스터리였던 사도세자의 병세와 아버지 영조와의 갈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곳곳에 자신의 지병(우울증)을 호소하는 내용들이 언급됐다. 1754년 10월, 또는 11월 어느날의 편지에는 '나는 겨우 자고 먹을 뿐, 허황되고 미친 듯합니다'라고 토로했다. 의관에게 알릴 경우 가뜩이나 자신을 미워하는 아버지 영조에게 전해질까 두려워 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반면 병중에도 국정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곳곳에 드러내기도 했다.
세자가 8일간 뒤주 속에 갇혀 극한의 고통 속에 죽은 뒤 영조는 곧 크게 후회하여 思悼(사도)의 시호를 내렸다. 무릇 극한의 갈등은 극한의 오점을 남기기 쉽다. 200여 년 전의 큰 비극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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