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좋은 가격을 받지 못하면 헛농사나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품질이라도 한 송이에 1천 원 정도 가격 차이가 나기도 하니까요."
칠곡 기산면 각산2리 찰전농장에서 백합 농사를 짓는 백재기(49) 대표는 거래처를 많이 갖고 있다. 일본에 70% 정도 수출해 국내 물량은 30%에 불과하지만 거래처는 서울 양재동과 서소문, 경동시장, 강남터미널 등 4곳이나 된다. 대다수 농가들이 힘들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한두 곳을 정해두고 거래하지만, 거래처가 많아야 출하 가격을 비교해가며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거래처를 많이 두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일년 내내 활짝 핀 백합이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적어도 수출용은 꽃이 피기 시작하는 일주일 전, 국내용은 3, 4일 전에 출하합니다. 그래서 늘 꽃송이가 벌어지기 전에 시집을 보낼 수 있지요."
백 씨는 출하시기 조절에도 신경을 무척 쓴다.
첫 번째 꽃을 출하한 후 4월쯤 뿌리를 튼실하게 하는 양구기간을 가진다. 5월엔 저온창고로 옮겨 저온처리를 해서 강제휴면상태를 지속한다. 외국꽃들이 수입되지 않는 시기인 10월 말쯤 가격이 좋은 시기를 틈타 본포로 내와 1월 말부터 4월까지 2번째 꽃을 출하한다. 여기에다 이곳에서 재배하는 백합 6가지는 모두 피는 시기가 다르다. 역시 가격을 잘 받기 위한 전략이다.
백 씨의 백합 하우스는 3곳에 나눠져 있다. 들판 한가운데 7동의 비닐하우스와 5동 하우스. 3동짜리는 마을 입구에 있는 집안에 있다. 2천100평 규모. 백합뿐 아니라 벼농사를 4천500평 정도, 두릅을 3천 평 정도 짓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모두 백 씨와 부인 김윤자(47) 씨가 다 해낸다.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찰전농장만의 독특한 시설은 보광등이다. 백합은 빛을 많이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빛이 부족하면 밤에 보광등으로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그는 백합농사를 시작한 후 영농일기를 꼼꼼히 작성하고 있다. 꽃 품종과 구근의 크기, 정식일, 출하일은 물론 공판장별 가격도 세밀하게 기록한다. 영농일기는 다음 농사의 방향과 스케줄을 판단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백 씨는 맨손으로 시작해서 연간 억대의 백합 농사꾼으로 성장한 자수성가 농사꾼이다. 한창 잘해오던 참외농사를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백합으로 전환한 도전정신이 성공의 근원이다. 2000년 농림부의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 청와대 농민단체인사 오찬 간담회(전국 250명)에 초청됐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농장 방송을 보기도 했다.
"백합은 흔히들 서양꽃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나리꽃"이라고 설명하는 백 씨는 "요즘은 엔화가 너무 폭락해 내수 판매를 늘리고 있지만, 결국 수출물량을 늘리는 것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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