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시평] 6월 뻐꾸기는 여전히 우는데…

입력 2007-06-13 10:17:05

지난 3일 대구 반월당 염매시장 한쪽 '곡주사'라는 허름한 막걸리집에서 '반갑다 친구야'라는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대구지역의 전체행사 가운데 들머리 행사로 대구지역 386세대들인 한국청년단체연합회(KYC)가 주관한 행사였다.

나는 축시 낭송을 부탁받고 이 행사에 참석했다. 들러보니 70년대 학번은 나 혼자였고 참석자 대부분이 386과 90년대 학번이었다. 6월 항쟁 때 활동했던 대학 출신의 '함성'이란 노래패가 당시 유행했던 '5월 출정가', '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투쟁가를 부르면서 분위기를 이끌었고 참석자들은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어깨 위에 올렸다가 허공을 향해 치켜들면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일부는 가끔씩 '투쟁! 투쟁!'이라는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독재타도 호헌철폐'라는 당시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임시로 설치한 화면에는 87년 당시의 시위현장이 영상으로 재연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여전히 우렁찼고 만남은 반가웠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픔과 비애가 깃든 듯했다. 대학생이었거나 노동자였거나 간에 젊은 시절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버리고 우리 사회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불살랐던 이 순수하고 고결한 영혼들이 벌이는 축제를 보면서, 권하는 술잔을 뿌리치지 않고 듬뿍 마신 막걸리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물론 참석자 가운데는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총선에 출마한 적도 있고 지금은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되어 부분적으로 형편이 나아 보이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 참석자들은 한때 잘나갔던 386과는 달리 여전히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삶은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였고 또 일부는 시민운동 판에 남아 여태껏 미해결된 사회공동체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386 가운데 일부는 지난 10년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 소위 빛을 봤다.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을 정책으로 실현시킬 기회를 잡기도 했고, 정치인으로 대중의 환호를 받은 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그날 모인 친구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다 말고 덜 끝낸 직장일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가기도 하고 어려워진 가정 살림살이를 걱정하기도 하고 대학 시간강사의 애환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들은 87년 당시 민주화운동의 전사였을 것이다. 화염병조나 짱돌조에 편성돼 최전방에서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들의 삶은 경제적으로 볼 때 우리 현실의 후미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 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곧바로 오늘 우리 현실의 상징체였다. 빈부갈등, 양극화가 고스란히 그들에게 옮겨왔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물론 아니다. 68학생혁명 이후 독일 프랑스 같은 유럽이 그랬고, 동경대사태와 안보운동으로 유명한 60, 70년대 일본 대학생들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과거의 학생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의 경력이 족쇄가 되어 제대로 취직도 못하고 사회적 낭인으로 떠돈 예가 있다.

물론 그날 6월 항쟁 기념식 자리에 모였던 친구들이 사회적인 낭인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에서, 말하자면 학생운동의 어떤 양극화 혐의를 느꼈던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나 자신 역시 그 자리에서 '친구여 대답하라'며 그날의 열정과 함성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부르짖는 시를 낭송했다.

그 뜨거웠던 6월의 거리, 열망과 항쟁이 교차했던 6월 민주화운동이 있은 지도 20년이 되었다. 그 동안 우리사회는 얼마나 변했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진전됐나? 지난 20년간 과연 국민들 삶의 질은 향상되었는가? 6월 뻐꾸기는 여전히 울고 찔레꽃도 피어나지만 이제 우리 농촌은 한미FTA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농촌이 없으면 민족의 정체성도 문화도 미래도 없다. 사회양극화로 노숙자가 줄을 잇고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현실과 인권유린 앞에서 울고 있다. 한반도의 북쪽은 기아와 외세의 압박 아래서 신음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인류의 보편적 염원인 인권과 평화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통일에 대한 민족 정서는 점차 희박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우리는 어느덧 물신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인간의 존엄을 갈구했던 그 고결한 6월 항쟁의 정신으로 오늘 나 자신을 성찰해 본다.

김용락 시인·경북외국어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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