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의 과수원에 얼마 전 일이 벌어졌다. 사과꽃이 작년의 10분의 1밖에 피지 않은 것이다. 친구가 사과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올해로 7년째이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 속수무책이다. 7년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남을 시간이지만 사과 농사에서는 그리 오랜 기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가 심은 사과나무 역시 작년에야 처음으로 본격적인 수확을 했을 정도로 어리다.
알음알음으로 그 사과를 먹어본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저농약 사과라서 껍질째 먹을 수 있으니 껍질을 깎아서 먹는 사과와는 근본적으로 맛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사과를 먹어본 사람들은 옛날의 진짜 맛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껍질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맛에 비하면 껍질을 제외한 과육은 별맛이 없다. 고기에 비유하면 껍질은 씹을수록 맛이 배어나는 갈비, 과육은 그냥 퍽퍽한 살이다.
그는 스스로가 사과를 좋아해서 인근 지역에서는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사과 농사를 시작했다. 그것도 해발 500m 가까운 고랭지에 겨울에는 영하 30℃까지 내려가는 골짜기에 사과나무를 심은 것이다. 바로 자신이 먹어본 옛날 사과 맛을 가지고 있는 품종을 애써 골랐고, 소를 키우면서 거기서 나온 배설물로 거름을 만들어 과수원 바닥이 푹신할 정도로 퇴비를 했다.
사과농사에 성공한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화학비료와 농약, 크기를 키우고 모양을 좋게 하기 위한 호르몬제와 착색제를 쓰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배워서 자신의 과수원에 적용했다. 이런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작년에 사과나무들은 가지가 좁을 정도로 많은 꽃을 피워냈다.
한 그루에 백 개 가까운 사과를 맺었고 열렬한 호응 속에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사과 상자를 만들어 내년의 풍요로운 수확을 기약하면서 창고가 비좁도록 쌓아두기까지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사과나무가 올해는 꽃을 거의 피우지 않은 것이다.
선배들의 충고에 따르면 작년에 사과나무마다 틈틈이 몇 줌씩 화학비료를 주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유기농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학비료를 쓸 생각이 없었다. 그가 사과나무에 준 퇴비는 사과나무 자체에는 보약 같은 것이지만 정작 사과의 결실에 요구되는 건 화학비료의 단기적인 거름 효과라고 한다. 즉 그의 사과나무는 옛날 맛에 가까운 사과를 맺되 일정량의 화학비료를 요구하도록 개량된 품종인데 그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린 사과나무는 작년에 한껏 열매를 맺어서 주인에게 보답을 한 뒤 정작 자신이 필요로 하는 화학비료의 솜사탕 같은 거름기를 전혀 얻지 못하자 올해는 제가 알아서 쉬는 것이다. 이런 걸 해거리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자연의 유실수에 있는 해거리가 과수원에 일어나면 농부는 한 해 농사를 작파할 수밖에 없다. 농부의 은덕으로 맛있는 사과를 맛보아왔던 도시 생활자들도 한숨을 쉬고 있다.
전면적으로 화학비료를 쓰게 되면 살충제와 제초제를 써야 하고 땅은 거칠고 메마른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어디를 가지도 못하는 사과나무는 돌 같은 땅에 붙들려 화학비료와 농약을 주입받고 농부는 투입한 비용을 상회하는 생산물을 얻는 공장의 공장장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사과나무를 좋아하고 껍질째 먹는 사과를 먹고 나누기 위해 사과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친구는 지금 농사를 짓지 않을 때보다 더 바쁘다. 결실 없이 쉬는 동안 사과나무가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가지를 자르고 뿌리를 드러내는 한편 퇴비를 줄이고 있다. 내년에 그는 최소한의 화학비료를 쓰고 여전히 껍질째 먹을 수 있는 사과를 생산해낼 것이다. 그때까지 그 사과의 소비자 역시 해거리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농약과 항생제, 유전자 변형 종자, 인공 감미료와 착색제, 조미료로 만들어진 음식의 그물망 속에서 평범한 소비자로 살면서 그나마 옳은 선택을 한 농부의 생산물을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태풍이나 병충해로 한 순간에 일 년 농사를 작파하는 지경에 떨어진 농부들의 심정을 이제야 알 것 같다는 친구의 올 한 해가 부디 많은 빚을 안겨주지 않고 넘어가기를 빌 뿐이다. 사과 껍질에 강력한 항암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니 더욱더 그 사과를 먹고 싶다.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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