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늙었다고 버리다니

입력 2007-06-12 07:54:52

얘야, 포도밭이 점점 더 푸르러지고 있구나.

포도 줄기는 지금 열매를 매달고 가을을 기다리겠지.

포도밭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구나.

멀리 유럽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구나.

한 훌륭한 임금이 있었어. 그 임금은 누구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종을 울리도록 하였지. 그래서 종각을 짓고 밧줄을 매어두었단다.

종을 울릴 때마다 임금은 종을 울린 사람을 불러다가 억울한 사연을 듣고는 잘 해결해 주었단다.

세월이 지나자 종을 울리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어. 억울한 사연이 그만큼 줄어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밧줄이 점점 닳아서 마침내는 사람들의 손에 잘 닿지 않게 된 탓도 있었단다.

그래서 종각을 지키는 관리가 포도 줄기를 잘라와 밧줄 대신 매어두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그 종을 울렸어.

관리가 달려가 보니 그 종의 밧줄을 당기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늙은 말(馬)이었어. 눈곱이 더덕더덕 끼인 얼굴에 온몸이 비쩍 말라 있었지.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이 분명했어.

'아니, 이 늙은 말이 왜 종을 울렸을까?'

그렇지만 종을 울린 것은 분명하니 관리는 말을 몰고 임금에게로 달려갔어.

"임금님, 이 말이 종을 울렸습니다."

"그래? 아마도 이 말은 집을 나온 모양이로구나. 그렇다면 이 말에게 억울한 일은 없는지 알아보아라. 늙은 말은 지혜롭다고 하였거늘 함부로 버리면 안 되지. 옛 동양에서는 길을 잃으면 늙은 말을 앞에 풀어놓고 뒤따라간다고 하였어. 늙은 말은 그만큼 경험이 많기 때문이지. 그처럼 귀한 말을 함부로 버리다니……."

"네이."

그리하여 신하는 말 주인을 찾아보았어.

그랬더니 그 말 주인은 구두쇠로 이름난 한 상인이었어. 이 상인은 이 말을 타고 먼 나라를 다니며 장사를 하곤 하였대. 사막에 갔을 때에도 이 말 덕분에 살아 나올 수 있었지. 그런데도 말이 늙어 제대로 걷지 못하자 먹이를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학대를 한 것이었어.

그러자 이 말은 집을 나오게 되었고 배가 고픈 나머지 종각의 포도 줄기를 물어 당긴 것이었지.

마침내 임금이 판결을 내렸어.

"자신을 살려준 말을 함부로 굶기고 내쫓은 죄는 매우 크다. 앞으로 벌을 받지 않으려면 이 늙은 말을 잘 보살펴 주어야 한다. 어떻게 하겠는가?"

"알겠습니다.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말 주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몰고 돌아갔단다.

그 뒤 이 말은 편안하게 지내다가 일생을 마칠 수 있었지.

이 세상 동물 중에서 은혜를 가장 잘 잊어버리는 동물은 사람이라고 한다는데 참 부끄러운 말이 아닐 수 없구나.

얘야, 너는 결코 은혜를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심후섭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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