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곧 국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프랑스의 루이 14세(1638~1715)는 '태양왕'이라는 별칭 그대로 무소불위의 절대군주였다.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보냈던 그에게도 한가지 열등감이 있었다. 바로 작은 키. 그가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부풀린 가발을 쓴 것도 작은 키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루이 14세의 하이힐과 가발은 17세기 프랑스 사회의 유행 아이콘이 됐고, 그바람에 발 전문의사라는 신종 직업도 생겨났다 한다.
구두는 원시사회에서 짐승가죽으로 발을 감싼 것에서 유래됐다. 지금 우리가 신고 있는 현대식 구두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사냥할때 달리기 편하게 만들었던, 바닥이 평평한 모카신이 원류로 꼽힌다.
구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왔다. 현대인에게 구두는 생활필수품이자 토털패션의 주요 아이템이다. 그중에서도 하이힐은 여성 구두의 영원한 스테디 셀러다. 흔히 발 모양이 변형되고 무릎과 허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만 여성들은 결코 하이힐을 포기하지 않는다. 옷맵시를 살리고 여성적 섹시함을 드러내는 데 이보다 효과적인 수단도 드물기 때문이다.
요즘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하이힐이 있다. '마놀로 블라닉'구두.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60대 구두 거장 마놀로 블라닉의 작품이다. '높고, 섹시하면서도 언제나 우아한(High, sexy but always elegant)'이 주요 콘셉트인 마놀로표 구두는 보통 10㎝ 높이에 손가락 굵기도 안되는 가느다란 굽이 특징. 게다가 깃털, 크리스털, 진주, 레이스 등 온갖 소재들을 자유자재로 매치시킴으로써 구두를 예술적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너무 예쁘고 매혹적이지만 자칫 깨뜨려지기 쉬운 장식품 같다 할까. 보통 100만 원에서 수백 만 원까지의 대단한 고가임에도 세계적으로 마놀로 블라닉 마니아들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가 뉴욕 거리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 "…제발 마놀로 블라닉 구두만은 안돼요"라고 통사정하는 장면은 유명한 일화다. 이미 서울의 모 대형 백화점에도 매장이 들어와 있을 정도다. 하이힐을 신었던 절대 군주, 무덤 속의 루이 14세가 아쉬운 한숨을 내쉬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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