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많아 산 따라 물길도 많은 우리나라엔 물과 관련한 놀이 문화들이 많다. 아마 물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없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처럼 공부할 일이 별로 없는 그 때의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까 하는 고민만 하며 살았다. 그 고민이 바로, 다름 아닌 창의력인 셈이다. 물놀이는 우리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놀이터였다.
산을 끼고 자리 잡은 아담한 농촌 마을엔 어김없이 마을을 에둘러 나가는 개울 혹은 냇가가 있었다. 그 개울은 한 여름이면 멱을 감고 미꾸라지도 잡으며 개헤엄을 치던 물놀이 장이었다. 그 짓도 심심하면 둑방에 올라가 냅다 개울로 곤두박질치거나 코 잡고 누가 오래 버티나등 별 시시껄렁한 내기에 신명을 바쳤다.
그 이름도 자랑스런 해병대 출신 삼촌을 둔 진명이가 까만 고무 튜브 하나 들고 나타나면 곧 바로 우리들의 표적이 되었다. 고무 튜브를 빼앗으려는 심술쟁이들과 뺏기지 않으려는 진명이와의 전투가 벌어진 후엔 으레 진명이는 팬티 바람으로 동네로 달려갔다. 동네로 달려가는 폼이 저희 삼촌을 데리러 가는 길인 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개울놀이를 얘기하려다 진명이 삼촌, 즉 학수 삼촌(우리는 학수 삼촌이라 불렀다) 얘기를 아니 꺼낼 수 없다. 얘기가 엇길로 빠지더라도 이해해 주시라. 학수 삼촌은 술만 먹으면 동네 개들이 남아나지 않았다. 남아나지 않았다는 표현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학수 삼촌이 멍멍이 요리를 해 먹는 상상은 금물이다.
그는 술이 취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군홧발로 개들의 옆구리를 차대는 버릇이 있었다. 멀쩡히 빈 밥그릇 핥아먹던 개들은 학수 삼촌의 우악스런 군홧발에 '깨깽' 소리도 못 내고 옆으로 픽픽 쓰러졌다.
그러면 개주인은 빗자루 몽둥이를 들고 뛰쳐나왔다. 뭐 낀 놈이 성낸다고, 한 바탕 멱살을 쥐고 드잡이를 하다가 힘 좋은 학수 삼촌은 개 주인을 내동댕이치고 또 다른 집으로 씩씩거리며 내달렸다.
학수 삼촌의 이런 기행(奇行)의 발단은 군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대 시절, 해안 수색대에 있을 때, 중사 계급을 단 세퍼드를 어찌어찌 해치우고 동네 똥개를 대신 채워 넣었다가 된통 걸려 영창까지 갔다 온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술만 먹었다 하면 개 알기를 축구장의 축구공쯤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진명이가 쫓아가 학수삼촌을 앞세우고 나타나면 우리는 어떻게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팬티도 입지 않고 득달같이 쫓아가 진명이를 달래야 했다. 고동을 잡아준다, 황운 냇가에 가서 가재를 잡아준다, 그것도 여의찮으면 수박서리까지 당찬 제안을 해야 진명이의 노여움이 겨우 풀리곤 했다.
팬티바람으로 동네 조무래기들은 진명이를 앞세우고 물 맑은 계곡으로 가재잡이를 나갔다. 말린 오징어를 먹이로 쓰면 쉽게 가재를 잡을 수 있었다. 만일 그물을 쓸 때는 뒤쪽으로 떠올리는 게 좋았다. 가재는 헤엄치고, 뛰어오르고, 기는 세 가지 동작을 모두 하는데 뛰어오를 때는 꼬리를 써서 뒤쪽으로 뛰어오르기 때문에 뒤쪽에 그물을 가까이 대야 기분 좋게 가재가 걸려든다. 또 가재들은 바위사이에서 요리조리 숨어 다니기 때문에 손으로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가재잡이가 끝나면 주전자에 미꾸라지 한 가득 잡아서 집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미꾸라지 잡은 건 뒷전이고 옷 다 버렸다고 야단을 쳐대도 그것도 잠시…. 미꾸라지 푹푹 삶아서 끓인 추어탕 맛에 저절로 신이 나서, 내 장래 희망은 졸지에 고기 잡는 선장으로 부풀기도 했다. 미꾸라지 몇 마리 잡아와 놓고 언강생심 선장까지 꿈꿔 보던 그런 황당한 어린 날이었다.
용이 회돌아 간다는 뜻의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 마을에서 물고기 잡이가 가능하다. 경치 좋기로 소문난 회룡포 마을에서 아이들과 반두 들고 물고기 잡이는 어떨까? 많이는 말고 몇 마리만 잡아보는 추억도 괜찮을 듯하다. 연락처:011-9828-7022
배 부르면 둑 방에 드러누워 파란 하늘 사이로 떠가는 흰 구름 따라 가다보면 아련한 옛 추억도 만나게 되리라.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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