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가 아들집에 들렀다. 진수성찬은 아예 기대하지 않았지만 며느리마저 일하러 나간 뒤 강아지와 지내는 낮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다. 우연히 가장 소중한 사람의 순서를 매겨 놓은 며느리의 일기를 보게 됐다. 제일 우선은 자식이었다. 그 다음은 자신의 삶이 소중하다고 썼다. 세번째는 남편이었다. 네번째인 친정 부모의 다음 자리는 강아지가 차지했고 마지막 순서가 시부모였다. 며느리의 일기를 보게 된 노부부는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
얼마전 통계청이 신생아에게 예상되는 평균적 생존연수, 즉 기대수명이 가장 긴 곳은 남자의 경우 서울이라고 발표했다. 자연 환경이 낫다는 강원도는 아예 전국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통계청은 직업과 소득, 의료수준 등 사회 경제적 특성이 노인수명에 영항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가난, 질병 못잖게 외로움과 할 일이 없는 것도 노인들을 위협하는 적이다. 외로움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수명이 길어지거나 짧아지기도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60대 이상 노인층의 자살은 전체의 30%에 육박했다. 최다 자살 노출계층이던 41~45세(남성)의 자살률을 훌쩍 넘어섰다. 외로움은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중요한 이유라고 한다.
10대들의 공간이던 콜라텍은 이미 노인들의 차지가 됐지만 공원은 여전히 노인들의 놀이터다. 종묘 공원은 서울에서 노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장기판을 놓고 하루를 보내는 이도 있고 이동식 노래방기기에 맞춰 노래하고 춤 추기도 한다. 속칭 '박카스 아줌마'도 득실대고 술판에 고함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인근에 시설 좋은 노인복지센터가 있지만 간섭받지 않고 끼리끼리 모여 부대끼는 즐거움에 늘상 이곳만 찾는 단골이 적잖다.
'노인들의 해방구'로 불리는 종묘공원 일대를 서울시와 종로구가 대대적으로 정비할 계획을 발표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주변이 난장판이 되고 있다는 시민들의 항의 때문이라고 한다. 문화유산을 정비하고 보존한다는 데야 이의가 없다. 그러나 가족과 직장에대한 희생과 헌신을 의무로 알고 살아 온 노년들에게 단속의 호각소리가 합당한 대우인지 모를 일이다. 행여라도 갈 곳 잃은 노년들이 갈 곳 많고 놀 것 많은 세대들에게 '우리에게도 놀 공간을 달라'며 시위를 벌이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서영관 북부본부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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