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린 대구 조폭들] (上)건설·유통까지 손뻗쳐

입력 2007-06-07 09:26:14

깍두기 머리 'NO'…문신하고 몰려다니며 패거리 위세 '옛말'

'깍두기 머리나 문신은 NO'

대구의 조직폭력배들이 변하고 있다. 예전처럼 구역을 정해놓고 상대방 영역을 침범하면 칼부림을 벌이거나 떼지어 몰려다니며 '위세'를 떨치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요즘에는 머리카락을 짧게 깎는 소위 '깍두기 머리'도 하지 않아 겉보기에 폭력배인지 알 수 없는 이들도 상당수다. 이는 대구 폭력조직들이 단속, 자금력 부족 등으로 상당 부분 와해됐기 때문이지만 외형적으로 합법적인 사업에 대거 뛰어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본사 기획탐사팀은 과거와 달라진 폭력배들의 세계를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개인화되는 폭력배들

"문신을 하지도, 살을 찌우지도 않습니다."

요즘 젊은 조직폭력배들은 과시용으로 문신을 하거나 일부러 살을 찌우지 않는다. 튀는 모습이 싫고 굳이 '위세'를 보일 만한 일거리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이 조폭 생활을 했다는 K씨(30)는 "한때는 온몸 문신을 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요즘에는 꼭 필요하면 몇 년 후 없어지는 헤나문신을 한다."면서 "'깍두기 머리'를 거부하는 후배들도 많다."고 했다. 유흥업소 등에서 보호비를 뜯거나 패싸움을 벌이지도 않아 과거처럼 개 사료 등을 먹고 체중을 불리는 일은 더더욱 없다.

대구 성서경찰서의 한 형사는 최근 100㎏이었던 몸무게를 20㎏이나 감량했다. 더 이상 무거운 체중을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 그는 "10여 년 전만 해도 거구의 조폭들을 제압하려면 살을 찌워야 했지만 이제는 그런 조폭들이 많지 않다."고 했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엄격한 조직의 규율이나 상징 가치가 우선시되었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신세대들이 조직에 합류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사업 다각화하는 폭력조직

폭력조직들은 연령대별 계 모임 등을 통해 친목을 다지고 있어 충돌은 거의 없다. 조직원 A씨는 "대구에서 제일 큰 조직인 동성로·향촌동파의 중간보스급은 서로 다 알고 친하게 지낸다."고 했다.

대구경찰청 관계자는 "90년 초까지만 해도 조직 간의 이권 다툼으로 잦은 충돌이 있었지만 싸움이 없어진 지 10년이 넘었다."면서 "조폭들끼리 함께 경조사에 참석하고 자주 어울리기도 한다."고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자신의 구역에서 받던 슬롯머신 업소, 유흥업소 등의 보호비가 거의 없어져 영역 다툼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조폭 B씨는 "예전에는 포장마차, 노점상 등에서도 보호비를 받았는데 이제는 사업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폭력배들은 사업 다각화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동구연합파는 몇 년 전 출장 안마를 기반으로 자금을 모은 뒤 현재 건설, 유통, 부동산 개발업, 경매 등 각종 사업에 뛰어 들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얘기다.

동성로파와 향촌동파 두목급들은 대구에서 건설 시행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는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한 향촌동파 조직원은 세무사까지 고용해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한 동구연합파 조직원은 중앙아시아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동성로파 조직원 C씨는 "6개 국어를 할 정도로 외국어에 능숙한 간부가 있어 조직원들에게 영어 인사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경래 박사는 "조폭은 초기 갈취 단계, 매춘 도박 단계를 거쳐 현재 합법화 기업화 단계에 와 있다."면서 "조폭들은 몰려다니지 않고 필요할 때 조직원들을 동원하는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기획탐사팀=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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