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화장과 문신

입력 2007-06-07 07:25:57

화장의 목적은 누가 뭐래도 아름다운 얼굴을 꾸미는 데 그 뜻이 있고 한편으로는 얼굴의 결함을 보완하는 데도 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화장으로 자신의 얼굴을 오히려 망쳐놓는 경우도 허다하다.

셰익스피어는 여자들의 화장을 두고 이렇게 빈정댄 적이 있다. "여자들은 본래의 아름다운 얼굴에다 연지분을 발라 전혀 다른 낯을 만들어 놓는다". 화장은 아름다움과 피부보호뿐만 아니라 자기과시와 종족·신분·계급차별화, 종교적인 목적도 있었다.

어쨌든 화장은 여성에 있어 개성의 표출이요, 심성의 연출임에 분명하다. 화장법과 화장품은 언제나 다채롭고 다양하나 그 뜻한 바나 목적에는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얼마 전, 눈썹과 눈썹 사이가 너무 멀어 '난 참 바보처럼 보인다.'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미간(眉間)이 멀어 당신으로 인해 같이 있는 사람이 더 빛나게 된다."는 어느 어르신의 칭찬 아닌 칭찬이 더럭 나만 손해 보겠다 싶은 생각에 이르자 그 사이를 좀 좁혀야겠다는 생각으로 화장이나 다름없는 문신을 덜커덕 해버리고 말았다.

상처가 미처 가라앉지 않은 며칠 뒤 금용사 복지관에 갈 일이 있었다. 안 그래도 누가 눈치 채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데 관장 스님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미간이 너무 좁아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 놓은 보살님의 이미지가 없어지고 속 좁은 아줌마로 보여 너무 싫다."며 정색을 하는 바람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낭패다. 당장 피부과에 전화를 걸어 도로 제거해도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한 3개월쯤 지나면 색깔이 옅어지기는 하나 지금 당장은 제거할 수도 없다는 대답이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온갖 집착과 모순과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외부적인 모순에서 과감히 탈피해 줄곧 내면의 모순을 갈고 닦는 성직자들의 얼굴을 보라. 달덩이처럼 훤하다. 평생 화장을 하지 않아서도 그렇겠지만 아웅다웅 비좁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 범인들과는 다르다.

누군가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흔히 '생긴 대로 놀고 있네.'라고 비아냥거리듯 말한다. 그렇지만 정작 '생긴 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사는 대로 생겨간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나의 어리석은 욕심이 빚은 실수가 부끄럽기만 하다. 겉모습은 내면의 표출이라는 간단한 진리를 이제야 제대로 알아 부끄러운 것일까.

김정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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