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6월. 도심 곳곳은 하얀 가루로 뒤덮여 있었다. 최루가루다. 바람이라도 불면 차도와 보도에 깔려있던 최루가루가 날리면서 행인들은 재채기와 함께 눈물 콧물을 쏟아야 했다. 최루가루는 때때로 신발과 바짓가랑이에 묻어 사무실과 가정에서까지 소동을 일으켰다. 경찰이 뿌린 최루가루가 꽃가루만큼이나 至賤(지천)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笑劇(소극)이지만, 당시엔 벼랑끝에 선 것처럼 절박했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 구호는 마침내 6월 10일 전국을 뒤덮었고, 국민을 억누르던 군사정권은 降書(항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이 땅에 드리운 독재의 암운이 걷히고 '절차적 민주화'가 이뤄졌다. 이른바 '87년 체제'다. 6'10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기념식과 토론회, 공연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개최된다. 대구에서도 오는 9일 오후 국채보상공원에서 기념식이 열리고, 통일마라톤대회도 예정돼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경제성장과 정치 민주화를 함께 달성한 나라는 드물다. 6월 항쟁은 우리를 그 '드문 국가'로 만들었다. 정부는 지난 4월 국무회의에서 6월 10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상황이다. 2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까지 이뤄지면서 '절차적 민주화'는 달성됐지만 사회적'경제적 민주화는 여전히 五里霧中(오리무중)이고,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고착화하고 있다.
군사정권의 폭압 통치를 깨뜨리고 '87년 체제'를 이끌어낸 데는 박종철'이한열 씨 등 많은 이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됐다. 동시대를 살면서 '살아남은 자'로서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인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특히 '87년 체제'의 최대 수혜자인 참여정부의 386세대를 비롯한 민주화운동 엘리트들은 '自省(자성)의 거울'을 준비해야 한다.
무얼 잘못했느냐고 강변하거나, 개혁 실패가 보수세력과 언론의 저항 때문이라며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지겹고 역겹다. '권력을 잡고도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참여정부의 파워엘리트들은 아직도 자신이 관료사회라는 茫茫大海(망망대해)에 떠있는 조그만 무인도인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부인하고 싶겠지만 참여정부는 착각과 오만으로 스스로 무너졌다. 최루가스보다 매운 것이 성난 民心(민심)이다.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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