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문의 펀펀야구] 양준혁…하늘이 맺어준 라이온즈와의 인연

입력 2007-06-01 09:33:11

양준혁과 삼성 라이온즈와의 인연은 참 특이하다. 첫 인연은 1988년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영남대로 진학한 양준혁이 비밀리에 박영길 삼성 감독에게 프로 전향의 의사를 내비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대답은 거절이었다. 아마 그때 삼성에 입단했더라면 지금 도전하고 있는 것은 2천 안타가 아니라 3천 안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 번째 인연은 1991년 11월. 신인 2차 지명에서 양준혁은 쌍방울 레이더스의 첫번째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협상 테이블에 앉아 보지도 못한 채 양준혁은 상무를 택했고 그 다음해 삼성의 1차 지명을 받았다. 당시에는 2차 지명을 한 선수에 대해 지명권 보유 권한의 세밀한 규정이 없었다. 이 불완전한 제도의 허점이 양준혁에게 삼성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세 번째 인연은 2002년 FA가 되어 LG에서 삼성으로 다시 오게 된 때이다. 선수협의회 파동으로 강성 이미지를 얻어 모든 구단으로부터 경계대상이 됐고 FA금액도 35억 원(보상액 포함)이라 진로가 불투명했지만 결국 삼성의 선택을 받았다. 우승을 원했던 김응용 감독이 삼성의 사령탑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2001년 두산에 이겨 우승했더라면 양준혁은 영원히 삼성으로 돌아오지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양준혁의 야구 인생에서 삼성은 가고 싶은 팀이었지만 가기에는 늘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던 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준혁은 신이 허락한 인연으로 라이온즈와 함께 했다. 그리고 3년의 외유 끝에 돌아온 그 해 삼성은 그토록 염원하던 우승을 했다.

양준혁마저 없었더라면 지역의 올드 팬들에게는 그 우승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나이가 든 노장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한 시대를 풍미한 마해영, 이종범도 점차 그늘 속으로 접어 들고 있는데 그들보다 1년 선배인 양준혁은 오늘도 야구장에서 즐거움을 안겨준다. 나날이 한국프로야구의 역사를 넘어서면서 통산 2000안타의 대기록 달성도 눈 앞에 다가왔다. 그의 존재는 많은 대구 팬들이 야구장을 찾는 이유가 됐고 그가 시원하게 때려내는 안타와 홈런은 지친 삶의 청량제가 되고 있다.

투혼을 불사르며 언제나 위풍당당하게 오늘까지 달려온 그의 힘은 무엇일까? 양준혁은 프로입문 6년째인 98년도 절정의 타격기량을 그라운드에 쏟아냈다. 수위타자(0.342)와 최다안타(156개), 그리고 출루율(0.450)에서 선두에 오르는 괴력을 보였지만 그해 겨울 돌아온 것은 해태 임창용과의 맞트레이드였다. 그리고 낯선 광주에서 채 적응이 되기도 전에 2000년 3월 LG의 손혁과 또 한번 맞트레이드되었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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