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축구리포트] 축구와 계급

입력 2007-05-31 09:17:56

윔블던 테니스대회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세계 3대 테니스 대회 중 하나로 명성을 인정받는 만큼 일년 내내 이 대회를 기다리는 영국인도 많다. 유력한 우승 후보인 로저 페더러에 관한 기사는 매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지난 주 챔피언스리그까지 막을 내리면서 영국 축구는 사실상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줄어 든 축구 기사만큼 테니스를 비롯하여 크리켓, 럭비, 승마, 복싱과 같이 다양한 분야의 기사가 신문 스포츠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사람들의 관심도 축구가 아닌 '제2의 스포츠'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

테니스를 즐기는 인구는 주로 상류 계층에 속해 있다. '잘 사는 사람'들이 윔블던대회를 앞두고 흥분하고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언론에서 아무리 홍보해도 대회에 관심이 없다. 반면 복싱이나 레슬링은 서민들이 중심가에서 벗어난 허름한 펍에서 내기하면서 보기에 적합한 스포츠다. 영국에서는 계층에 따라 스포츠를 즐기는 취향이 다르다.

축구에서 한 팀이 11명인 이유는 처음 축구를 즐겼던 영국 사립학교 기숙사의 방별 정원이 11명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복을 입고 축구를 했다. 양복을 입고 공을 찼기에 초창기에는 축구가 '귀족 스포츠'로 성장했다. 산업혁명 이후 근로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공장을 중심으로 축구팀을 육성하면서 노동자 계층도 축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공업도시 맨체스터와 무역도시 리버풀이 '축구 성지'로 자리잡은 것도 이때부터다.

오늘날의 영국 축구는 어느 특정 계층의 스포츠라고 규정할 수 없다. 런던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의 스탠드석 티켓은 유명한 웨스트엔드 뮤지컬의 티켓과 가격이 비슷하다. 축구에 비해 뮤지컬이 수 배에서 수십 배까지 비싼 한국과는 다르다. 한국에서 뮤지컬은 고급 문화이고 축구는 그렇지 않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영국 축구와 뮤지컬의 비슷한 관람료는 뮤지컬이 한국과 달리 대중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축구가 결코 값싼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영국인들은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에 맞게 축구를 즐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 축구장에서는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스탠드석을 찾는 사람과 축구를 보면서 사업상 회의나 접대를 하기 위해 로얄 박스로 들어가는 사람을 함께 만날 수 있다. 경기 티켓을 사고 기념품들을 모으며 구단에 소소한 사랑을 표현하는 팬과 수익을 기대하며 거액을 투자하는 부자도 있다. 영국에서 축구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각계 각층의 욕구를 반영하여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축구 시즌이 저물고 취향에 따라 각각 다른 스포츠를 찾아 흩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축구가 영국에서 얼마나 광범위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지 새삼 느끼게 된다.

박근영(축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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