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해주고 싶은게 너무 많은데…"
■아내의 독백
남은 시간이 별로 없네요. 당신과 아이들에게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언제 또 정신을 잃을지 몰라 두려움에 마음이 급해집니다. 여보, 정말 미안해요. 당신에게 그 많은 짐 남겨두고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절 용서해 주세요. 이 말을 당신 얼굴 보며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네요. 아이들도 너무나 보고 싶어요. 우리 막내 지영(8)이 많이 컸지요? 병원에선 당신과 아이들이 다녀갔다는데 왜 내겐 기억이 없나요. 이번엔 꼭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해야지 다짐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상처가 하나 더 생겨있네요. 오늘 간호사가 제게 그러더군요. 지영이가 "크면 의사가 돼 엄마 병을 고쳐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독기를 쏟아내며 미쳐 날뛰는 엄마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어린 아이가 힘겹게 내뱉은 말이라고, 그러니 빨리 나아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 말에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었어요.
여보, 아이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해주세요. 엄마가 많이 사랑한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고…. 엄마가 했던 말, 보였던 이상한 행동들, 이해 안 해도 되지만 대신 엄마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꼭 전해줘요. 또다시 환청이 들려오네요. 우리 딸 민희(20), 민지(11), 지영이 잘 부탁해요.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한다고, 엄마의 진심은 그게 아니라고 꼭 부탁이에요.
■남편의 독백
아내에게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아내는 더 이상 절 받아주지 않네요. 아내가 그토록 힘겹게 낳은 막내가 벌써 초등학생이 됐는데도 말이지요. 제가 욕심이 많은 놈이었나 봅니다. 아내가 삶을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요. 제 탓입니다. 다행히 아내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퍼부을 때도 순했던 눈빛만은 변하지 않았더군요. 아내의 눈빛에 담긴 희망을 보며 살고 있지요. 하지만 힘들지 않습니다. 다만 걱정이 될 뿐이지요. 정신지체장애(1급)를 앓는 민희, 아직 어린 민지와 지영이를 키워낼 자신이 점점 줄어들어서요. 상처밖에 주지 않은 엄마지만 감싸고 보듬을 줄 아는 이 착한 아이들을 올곧게 키워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먹을 것이라도 양껏 주고 싶지만 언제나 쌀이 모자라네요. 몸이라도 성하면 일이라도 나갈 텐데, 벽돌을 나르다 다친 허리는 나을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아내와 한 약속을 꼭 지켜낼 겁니다. 비록 공부시킬 돈이 없고, 맘껏 챙겨 먹일 수는 없지만 우리 아이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로 키워낼 겁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 남편 믿어달라고. 마지막으로 정말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29일 오후 중구 남산동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장수찬(가명·48) 씨는 큰딸 민희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희는 아무런 초점 없는 눈빛으로 장 씨를 바라볼 뿐이었다. 식욕 절제가 되지 않는 민희는 이미 아빠의 체중을 훌쩍 넘겨버린 상태였다. 그는 "아내가 유독 아픈 큰딸을 챙겼다."면서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민희를 잘 키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지와 지영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서둘러 먹을 것을 준비했다. 애써 웃음을 잃지 않으며 아이들을 챙기는 그의 모습에서 삶의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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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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