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어릴적 논둑에서 마셨던 막걸리

입력 2007-05-26 07:54:08

내가 어렸을 적만 하여도 일찍이 농사일을 배워 아침부터 하루해가 질 때까지 지게 위에 쟁기를 얹고 무논못자리 논두렁 위를 누렁소를 몰고 줄타기를 하듯 다녔다.

나이 드신 아버지는 뒤에서 마른기침을 하시며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학교 졸업하고 나면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열심히 공부하여 면서기라도 해야 농사일을 그만둘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 농사일만 하여야 한다." 고 말하셨다. 퉁퉁 부은 목소리로 짜증스럽게 "면서기는 그냥 하라하여도 안 합니다. "하던 내가 지금은 대구에서 말단이지만 공무원생활을 하고 있다.

비 오는 여름날 처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이 마당 한편에 방울지며 흘러가고 멍개구리가 울어대던 그때가 생각나면 술 한잔이 간절하다.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 누렇게 익은 보리를 베어 탈곡을 할 때면 보리털이 옷 속으로 날아들어 온몸을 깔끄럽게 괴롭힌다. 하지만 어머니가 새참으로 국수와 막걸리 한 주전자를 이고 오시면 목까지 타던 갈증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며 달랬다. 그때 그 막걸리 맛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지금 아버지는 작고하시고 어머니는 아흔 살이 다되어 가시는데 곁에서 모시지 못하다보니 어버이날이니 가정의 달이니 하면 마음이 울적해져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어머님전 상서' 불초자식은 멀리서…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며 죄책감에 빠져 그냥 대책 없이 울고 싶다. 어릴 때 온갖 짜증을 다 받아주며 막내아들을 끔찍이도 사랑해 주시던 어머니 생각에, 오늘은 그때 먹던 막걸리를 철철 넘치는 동이째로 들이켜고 싶다.

허이주(대구시 달서구 성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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