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 지역에 국한했던 불교를 세계 종교로 비약시킨 일등 공로자는 마우리아 왕조 세번째 왕인 아쇼카였다. 역사는 재위 초기까지의 아쇼카를 잔혹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이복형제 100여 명과 반대하는 신하 수백명을 참혹하게 죽인 비정한 왕이었다. 통일 과정의 전장에서 도륙한 적도 수십 만에 이르러 대륙의 강을 붉게 만든 살륙의 화신이었다.
이랬던 아쇼카가 자비와 평화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까닭은 무엇일까. 피비린내 나는 다툼에 대한 참회이자 평화와 자애로 충만한 이상적인 사회를 바라는 깨달음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아쇼카의 출신 계급에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부모중 한 쪽의 신분이 낮을 경우 낮은 계층으로 매김하는 당시의 카스트에서 아쇼카는 천민이었기에 계급의 차별을 부정하는 불교교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설이다.
후대의 연구가 어쨌든 아쇼카의 존재와 그의 참회는 불교의 세계화에 있어 꼭 필요한 계기였다. 큰 다름이 다시 큰 전환을 이뤄내듯 자비와는 전혀 딴판인 전쟁광의 변신이 불교의 씨앗을 전 세계로 전파시킨 것이다. 수많은 불탑을 세우고 경전 결집에 앞장선 아쇼카는 그러나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도 강조했다. 자신의 종교만을 숭상하고 다른 종교를 저주하지 말고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이라고 명령하고 있다.
중국 불교 서적중에 유일하게 經(경)의 이름을 얻게 된 법보단경은 중국 선종 육조스님 혜능의 설법과 대화를 모은 책이다. 금강경 독송을 듣고 바로 뜻을 깨쳤던 혜능은 땔감을 팔아 연명하는 일자무식꾼이었다. 많고 많은 識者(식자)들이 머리를 싸매는 판에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출현한 무지랭이가 대륙에 禪(선)의 불꽃을 피운 것이다. 집착을 철저하게 경계한 혜능은 그러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리지 말고 다만 '나'니 '남'이니 하는 족쇄에서 벗어나라고 권한다.
부처님 오신 날이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와 온 천지에 자비의 소리가 높다. 그러나 고달픔과 다툼은 해마다 이어져 묵숨까지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큰 반대가 다시 큰 전환을 이뤄내는 곳에 부처의 의미가 있다면, 오늘의 곤궁함과 피곤 역시 내일의 전환을 꿈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져보게 된다.
서영관 북부본부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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