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남한산성/김훈

입력 2007-05-24 11:13:29

'남한산성'은 죽음과 치욕 사이에서 오지도 가지도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조 임금은 청나라 대군이 침공하자 강화도로 도피하던 중 청군에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피했다. 남한산성은 둘레가 20리 정도 되는 석성으로 청나라 침공 당시는 겨울이었다. 먹을 식량이 없었고 입을 옷이 없었다. 심지어 인조 임금이 닭다리 하나로 하루를 견뎠다는 이야기도 있다. 소설은 성안에 갇힌 채 보냈던 46일간의 기록과 전후 며칠이 배경이다. 사실 청나라의 침공은 조선이 야기한 측면이 있다. 이미 중국대륙의 판세가 기울었는데도 여전히 조선은 명을 아버지 나라로 부르며 청을 오랑캐로 적대시했다.

청나라 칸은 인조에게 문장으로 말했다.

『내가 이미 천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땅 위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나를 황제로 여김은 천도에 속하는 일이지, 너(인조)에게 속하는 일이 아니다. 네가 명을 황제라 칭하면서 너의 신하와 백성들이 나를 황제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까닭을 말하라. 또 너희가 나를 도적이며 오랑캐라고 부른다는데, 네가 한 고을의 임금으로서 비단옷을 걸치고 기와 지붕 밑에 앉아서 도적을 잡지 않은 까닭을 듣고자 한다. 하늘의 뜻이 땅 위의 대세를 이루어 황제는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다. 네가 그 어두운 산골짜기 나라에 들어앉아서 천도를 경영하며 황제를 점지하느냐. 황제가 너에게서 비롯하며, 천하가 너에게서 말미암는 것이냐. 너는 대답하라.』

청태종이 보낸 이 서한은 소설로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이 내용은 당시 시대상황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당시 조선은 변방의 고을에 앉아서 천하를 운운했고, 전쟁이 시작되자 돌담(남한산성)안에 틀어박혀 한 세상을 열려고 했다.

성안의 혓바닥들은 화친과 전쟁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주전파인 김상헌은 임금에게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은 삶과 죽음을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고 하옵니다.』라고 했다. 주화파인 최명길은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라고 했다.

성안에서 최명길을 베어 그 목을 효수해야 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최명길을 목베라는 유생들의 진언이 이어졌다. 대의와 명분을 말하는 목소리는 높았고 현실을 말하는 목소리는 낮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고 싶어했지만 살아서 치욕을 견딜 수 없었고, 살기를 원해서 자손만대에 불명예를 남기고 싶어하지 않았다.

임금이 항복을 결심하고 화친을 원한다는 글을 쓰게 했다. 그러나 글을 쓰려는 자가 없었다. 그 글을 써서 화친이 이루어진다면 청군이 떠난 후에 맞아 죽을 게 분명했다. 또한 자손만대에 역적의 오명을 남길 수 없었다. 임금은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화친의 글을 쓰게 했고,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을 청태종에게 보내겠다고 했다. 글을 쓰도록 명령받은 자들은 쓰지 않으려고 몸부림 쳤다.

정육품 정수찬은 항복문서를 쓰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지병과 남루한 계급에 대해 주절거렸다가 곤장을 맞고 며칠 후 죽었다. 정오품 교리는 글쓸 종이만 펴놓고 지병이던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정오품 정랑은 간택되지 않을 글을 써서 바쳤다. 그는 미친 자나 쓸법한 글을 써서 죽지도 않고 역적이 되지도 않았다. 살고 싶었지만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선인들은 치욕을 견딜 수 없었고, 죽어서 영원히 살기를 바랐다. 치욕도 싫고 죽기도 싫은 자들도 많았다. 작가 김훈은 치욕과 죽음 사이에서 공평한 시각을 갖고 있는 듯 하지만, 죽음보다는 치욕이 낫다고 말한다. 죽어서 영원히 살기보다는 치욕을 견디며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조선 임금의 항복식 장면을 짧고 건조하게 다루고 있다.

삼배 구고두례.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한 항복례이다. 한번 절할 때마다 세 번 머리를 땅바닥에 부딪혀야 했고 부딪힐 때마다 소리가 크게 나야했다. 청 태종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다시 할 것을 요구해, 인조의 이마는 피투성이가 됐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소설 '남한산성'에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삼배만 있고 구고두례는 없다. 아주 간단하게 삼배를 마치고 항복례가 끝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작가 김훈이 삼배 구고두례를 몰랐을까? 아니다. 작가는 치욕의 삼배 구고두례를 의도적으로 짧고 건조하게 묘사함으로써 '견딜 수 없는 것은 죽음이지, 치욕이 아니다.' 라고, '치욕의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죽음보다 치욕이 낫다는 작가의 마음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인조가 항복을 결정하고 성밖으로 나가기 전 척화론자 김상헌은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급히 구조하는 바람에 죽지 못했다. 항복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던 『김상헌은 죽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김상헌은 남은 날들이 아까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김상헌이 실제로 '죽기보다 살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기야 했겠는가? 그러나 작가는 김상헌을 그렇게 규정함으로써, 모름지기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더불어 죽기를 원했던 자들이 진심으로 살기를 원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김상헌이 귀향길에 오르면서 '죽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장면과 청병의 수레에 타고 포로로 잡혀가는 조선여자들이 조선인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은 '어쨌든 살아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리얼리티의 정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리얼리티와 동떨어진 장면이다. 조선인의 사고방식이 그처럼 솔직했겠는가? 조선인들이 '현실은 현실이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그 난리를 당했겠는가?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은 괜한 폼을 잡기 위해 '차라리 죽겠다.'고 말한 게 아니라 그만큼 세상에 까막눈이었다.

이 부분 역시 작가의 고집으로 읽어야 한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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