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닉 에세이] 돌아오지 않는 시절

입력 2007-05-24 11:23:48

진료실에 들어서는 그녀의 외양은 평범하다. 그러나 상담 중에 그녀가 바라는 시술은 종류도 다양하고 기대 수준도 높았다. 우선 볼 양쪽에 나비문양처럼 선명하게 자리 잡은 착색을 백옥처럼 지우고 싶어 했다. 오렌지 껍질처럼 두껍고 모공이 두드러진 피부를 비단결처럼 원했다. 타조 벼슬처럼 늘어진 목살을 절벽처럼 날렵하게 만들 수 있는지 간절히 궁금해 했다. 그 다음은 음부에 모발이식을 원했다. 갈수록 점입가경 이다. 이는 필히 사연이 있으리라.

"이런 시술을 다 받으시려면 기간도 오래 걸리고 시술비도 만만치는 않아요! 차근차근 하나씩 검토 해봐요."

"시술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 말을 할 때 그녀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슴에 묻어두었던 사연을 어렵게 끌어 올려 터 놓았다. 두 부부가 20여년 마주보고 재봉틀 두 대로 시작하여 이제는 어엿한 중소기업을 일구었다. 사업이 커지면서 남편은 사장님에 걸맞은 신분 상승을 할 동안 그녀는 좋은 솜씨 때문에 여전히 재봉틀 차지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녀가 서슬 퍼런 결단을 내리지 않았으리라. 그 회사에서 경리 보는 젊고 예쁜 아가씨와 바람이 난 남편 앞에서 망연자실한 그녀는 순진하게도 그 바람의 원인이 늙어버린 자신의 외모에 있다고 판단하고 뭉칫돈을 들고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이 사연을 듣는 동안 나는 의사가 아니라 여염집 아낙이 되어 같이 서러워하며 흥분하고 어느새 그 남편을 같이 타박하고 있었다.

내가 치료하여 그 남편의 마음을 돌리고 어려운 시절 오순도순 재봉틀 앞에서 옷 만들며 돈 걱정하며 식은 도시락 나눠 먹던 그 시절로 돌릴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던 하리라. 내 실력으로 모자라면 밤새워 공부하여 진료 해주리라. 그러나, 그러나 그녀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 갈 수 있을까.

정현주 (고운미 피부과)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