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들어서는 그녀의 외양은 평범하다. 그러나 상담 중에 그녀가 바라는 시술은 종류도 다양하고 기대 수준도 높았다. 우선 볼 양쪽에 나비문양처럼 선명하게 자리 잡은 착색을 백옥처럼 지우고 싶어 했다. 오렌지 껍질처럼 두껍고 모공이 두드러진 피부를 비단결처럼 원했다. 타조 벼슬처럼 늘어진 목살을 절벽처럼 날렵하게 만들 수 있는지 간절히 궁금해 했다. 그 다음은 음부에 모발이식을 원했다. 갈수록 점입가경 이다. 이는 필히 사연이 있으리라.
"이런 시술을 다 받으시려면 기간도 오래 걸리고 시술비도 만만치는 않아요! 차근차근 하나씩 검토 해봐요."
"시술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 말을 할 때 그녀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슴에 묻어두었던 사연을 어렵게 끌어 올려 터 놓았다. 두 부부가 20여년 마주보고 재봉틀 두 대로 시작하여 이제는 어엿한 중소기업을 일구었다. 사업이 커지면서 남편은 사장님에 걸맞은 신분 상승을 할 동안 그녀는 좋은 솜씨 때문에 여전히 재봉틀 차지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녀가 서슬 퍼런 결단을 내리지 않았으리라. 그 회사에서 경리 보는 젊고 예쁜 아가씨와 바람이 난 남편 앞에서 망연자실한 그녀는 순진하게도 그 바람의 원인이 늙어버린 자신의 외모에 있다고 판단하고 뭉칫돈을 들고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이 사연을 듣는 동안 나는 의사가 아니라 여염집 아낙이 되어 같이 서러워하며 흥분하고 어느새 그 남편을 같이 타박하고 있었다.
내가 치료하여 그 남편의 마음을 돌리고 어려운 시절 오순도순 재봉틀 앞에서 옷 만들며 돈 걱정하며 식은 도시락 나눠 먹던 그 시절로 돌릴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던 하리라. 내 실력으로 모자라면 밤새워 공부하여 진료 해주리라. 그러나, 그러나 그녀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 갈 수 있을까.
정현주 (고운미 피부과)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