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박수근의 그림값

입력 2007-05-18 07:37:01

▲ 민병도(화가·시인)
▲ 민병도(화가·시인)

미술품 경매시장이 술렁거리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위 블루칩 대가들의 작품이 줄줄이 유찰되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현상이다. 그 가운데서도 단연 주목의 대상은 박수근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경매된 10대 미술품 가운데 박수근의 작품이 절반인 다섯 개나 차지한 것만 봐도 이를 증명하고 남는다.

가장 최근에 팔린 '시장의 여인들'이 25억 원으로 1위, '농악'이 20억 원으로 2위를 기록하는 등 특히 올해 들어 그의 작품은 경매 때마다 매번 최고가 기록을 경신해 가고 있다. 더욱이 가장 가난하게 살다간 화가의 작품이 가장 비싸게 평가받는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박수근의 그림인가? 무엇보다도 그의 그림에는 한국적인 향수와 서정이 물씬하다. 어쩌면 된장 맛과도 같고 화강암에 새겨진 마애불 같은 질감이 우리네 잠재된 정서를 자극해 높은 인기를 불러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학력이나 출신과 같은 사회적·경제적 지원 없이 한국 최고를 이루었다는 작가정신에 있을 것이다.

박수근은 6·25전쟁 후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고 가족을 먹여 살렸다. 초등학교만 나와 미술교육 한 번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고, 돈이 없어 백내장 수술을 미루다가 한쪽 눈을 실명했다. 말년에는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간 경화 치료를 받다 퇴원 후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그의 그림을 알아주는 이들은 대부분 미국인 부인들이었다. 이들에 의해 200점이 넘는 그림들이 미국으로 헐값에 건너갔다고 한다. 그 그림들이 지금 고국으로 되돌아와 수십 억 원씩에 팔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림이나 골동품 같은 문화유산의 값어치는 국가경제의 성장과 비례해 상징적 의미가 크다.

그의 작품 '빨래터'가 경매를 앞두고 있어 또 한 번의 기록경신이 눈앞에 와 있다. 40여억 원에 거래가 이루어질 전망이라니, 50달러에도 고마워하던 그의 힘겨웠던 삶이 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지금도 이 땅에는 제2, 제3의 수많은 박수근이 작품에 생애를 바치고 있다. 이제는 그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되었다.

민병도(화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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