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댄스 추는 여자 vs 벨리댄스에 빠진 남자

입력 2007-05-12 15:44:41

신진희 씨가 격렬한 브레이크댄스를 선보이고 있다.(사진 위쪽) 벨리댄스를 추고 있는 이재진 씨.
신진희 씨가 격렬한 브레이크댄스를 선보이고 있다.(사진 위쪽) 벨리댄스를 추고 있는 이재진 씨.

"남자 춤, 여자 춤이 따로 있나요? 즐겁게 즐기면 그만이죠. 안 그런가요?"

여자가 격렬한 브레이크댄스를 추고 남자가 부드러운 벨리댄스를 춘다.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하지만 춤은 춤일 뿐이다. 성(性)은 무의미하다. 사람들의 편견을 향해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는 춤꾼들을 만났다.

▶홍일점' 비걸

지난 5, 6일 대구 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비보이 댄스 페스티벌을 찾은 시민들은 비보이들의 화려한 춤에 환호성을 질렀다. 관중들이 더 환호한 것은 비보이 배틀을 펼치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여자였기 때문.

신진희(26·여) 씨는 브레이크댄스를 하는 여성인 비걸(B-girl)이다. 8년 전 브레이크댄스를 시작했다. 남자들만 추는 춤이라는 편견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여자라고 못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외국의 유명한 비걸들을 보면서 한층 자극받았다. 하지만 난관도 많았다. 여자는 브레이크댄스 자체가 힘들다. 남자보다 유연성은 뛰어나지만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헤어스핀, 에어트랙 등 어려운 동작을 하려면 남자보다 몇 배의 힘이 든다. 나인틴 동작의 경우 물구나무서기는 되지만 버티는 것이 힘들다. 남자들이 "그것도 못 하느냐."고 할 때는 속이 상했다. 무조건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부상을 달고 산다. 무릎, 손목, 허리, 팔꿈치 등 관절이 성할 날이 없다. 여자가 힘이 없으면 무거워 보이기 때문에 체중도 10kg이나 감량하고 근력을 키웠다. 하루에 4, 5시간 연습은 기본이다.

연습과 함께 연구도 했다. 풋워크의 경우 남자는 엉덩이가 작고 하체가 가볍기 때문에 빨리 움직일 수 있지만 여자의 경우 하체가 무겁기 때문에 익히는 것이 어렵다. 신 씨는 스피드에서는 남자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아기자기한 여성의 미를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신 씨의 춤실력은 비보이들도 인정하는 수준급이다. 남자들도 하기 힘들다는 나인틴을 2, 3바퀴 돌 수 있다. 비보이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도 있다. 바로 유연성이다.

신 씨는 현재 맹연습중이다. 17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비걸 배틀대회에서 한국대표로 참가하게 됐다. 그는 "세계 8개팀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꼭 우승해 대구 비걸의 춤실력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비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따뜻하지만은 않다. 비보이라고 하면 다 알지만 비걸이라면 여전히 생소해한다. 여자가 왜 그런 힘든 춤을 추느냐고 하면 오히려 오기가 생긴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이를 악문다.

"남자보다 3, 4배 더 열심히 해야 하지만 남자보다 잘하는 여자도 많습니다. 비보이들과 함께 당당하게 스트리트댄스 문화를 키우고 싶습니다."

▶'청일점' 벨리댄서

지난 7일 오후 7시 대구시 중구 동성로 벨리댄스코리아 대구지부&캣츠댄스센터. 흥겨운 벨리댄스 음악이 울려퍼지자 여성들 가운데 낯선 이방인이 눈에 띈다. 남자다.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 민소매 티셔츠와 바지가 여성 댄서들과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춤은 수준급이다.

이재진(31)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벨리댄스를 배우고 있다. 이 씨는 "거리축제에서 벨리댄서들의 공연을 봤는데 너무 매혹적이었다."면서 "남자가 해도 멋있을 것 같아 춤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원래 춤에 관심이 많았다. 라틴댄스도 1년 정도 배웠다. 하지만 막상 벨리댄스를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시내 벨리댄스 학원에 "남자도 할 수 있느냐?"고 문의했지만 번번이 퇴짜 맞았다.

어렵게 시작했지만 적응도 힘들었다. 여자들 속에서 남자 혼자 춤을 추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뒤에 선 여자들이 자신의 동작을 보고 비웃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구석에서 춤을 배웠다. 재미로 시작했지만 2, 3개월 지나면서 대화상대도 없는 등 적응이 힘들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여자들과 친하게 지내고 동작을 서로 고쳐주기도 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여전히 이 씨를 놀린다. 남자가 무슨 벨리댄스냐며 남자 망신시킨다는 핀잔도 받았다. 직장 동료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는 "구태여 알릴 필요도 없었지만 솔직히 쑥쓰러웠다."고 웃었다.

이 씨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동작은 엉덩이를 돌리는 힙서클, 힙업, 힙다운 동작. 또 목을 이용해서 머리를 돌리는 헤드슬라이드 동작도 수준급이다. "이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어디에 서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몸도 유연해집니다." 그는 "너무 재미있다."면서 "벨리댄스 공연 무대에서 당당하게 공연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관심있는 남자들은 쑥쓰러워하지 말고 일단 한번 와서 해보면 그 나름대로의 멋과 맛을 즐길 수 있다."면서 "여자친구가 생기면 벨리댄스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엔 이 씨처럼 벨리댄스를 배우려는 남자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곽은정 벨리댄스코리아 대구지부장은 "남자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배우면 여자보다 더 잘 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글·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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