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땅을 치면서 '범버꾸범버꾸'하니까, 춘돌이는 됐다면서, "너희들은 그렇게 '범버꾸범버꾸' 하고 먹어라. 나는 '얌냠' 하고 먹을게."하고 말했다.
- "지금 같아서 윤 초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 나는 염소모피를 벗어 아가씨 어깨 위에 걸쳐 주고, 모닥불을 이글이글 피워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둘이는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중략) 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있노라고. -
앞서 나열한 이야기들의 제목과 저자를 기억하는지? 맨 처음은 오영수의 '요람기', 두번째는 황순원의 '소나기', 마지막은 알퐁소 도데의 '별'이라는 작품이다. 세 편 모두 교과서에 실렸던, 그래서 동화책이며 소설책을 사서 읽는다는 것은 꿈도 못꾸던 시절의 독서기록을 떠올릴 때면 더욱 명료하게 남아있는 이야기들이다. 짓궂기만 사춘기 시절, '소나기' 주인공들의 풋내나는 사랑이, '별'의 목동과 스테파네트의 순수한 사랑이 못내 의심스러워 직접 집필한 후속작들을 내놓는 조숙하고도 친절한(?) 친구들도 있었다.
몇 년 새 어른들을 위한 동화나 우화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어찌보면 단순한 이야기 속에 담겨있는, 단순하기에 오히려 삶의 지혜를 굳이 감추지 않는, 괜시리 '현학의 허세'를 뽐내지 않는 작품들이다. '어른동화'라는 장르를 따로 떼어놓기는 어렵지만, 굳이 이런 분류에 넣어야 한다면 미하엘 엔데의 '모모', 생 텍쥐베리의 '어린왕자',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다.
동화 읽는 어른들도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 안정호(36) 씨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동화를 읽기 시작했다."며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고, 아들과 같은 책을 읽고 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소재가 풍부해져서 좋다."고 했다. 주부 이현숙(45) 씨는 조금 다른 이유로 동화책을 읽고 있다. (사)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인 이 씨는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책을 추천하기 위해 동화읽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책을 권하기 위해 동화를 읽었는데, 차츰 재미에 빠져들게 되더군요. 흔히 어린이 문학을 성인문학이 안되는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틀린 생각입니다. 문학적 완성도도 높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어려운 분야라고 할 수 있죠." 이 씨는 어른들이 동화를 읽고 이면에 숨겨진 배경을 전달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보물섬'은 멋진 해적을 등장시켜 약탈을 정당화하는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죠. 무인도에 표류한 이야기를 다룬 책들은 그 곳에 사는 원주민들을 동등한 인간이 아닌 '야만인'으로 치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죠."
초등학교 교사인 장모(32) 씨는 "학교에도 아동문학을 전공한 선생님이 거의 없는데다, 실제로 읽어보고 연령대에 맞는 추천도서를 권하지 못한다."며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의 공통점은 부모들이 책 읽는 모습을 자주 접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 어른들에게 권하는 동화 - (사)어린이도서연구회 권장도서목록
고함쟁이 엄마/ 유타 바우어 글, 그림/ 이현정 옮김/ 비룡소
그림도둑 준모/ 오승희 글/ 최정인 그림/ 낮은산
나쁜 어린이표/ 황선미 글/ 권사우 그림/ 웅진주니어
너하고 안 놀아/ 현덕 글/ 송진헌 그림/ 원종찬 엮음/ 창비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글/ 김한영 그림/ 사계절
문제아/ 박기범 글/ 박경진 그림/ 창비
산적의 딸 로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이진영 옮김/ 시공주니어
새끼 개/ 박기범 글/ 유동훈 그림/ 낮은산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 안미란 글/ 윤정주 그림/ 창비
아름다운 고향/ 이주홍 글/ 이정규 그림/ 창비
영모가 사라졌다/ 공지희 글/ 오상 그림/ 비룡소
하느님의 눈물/ 권정생 글/ 신혜원 그림/ 산하
하늘이랑 바다랑 도리도리 짝짜꿍/ 김세희 글/ 유애로 그림/ 보림
* 자세한 책 내용은 다음 카페 '대구동화읽는어른'(http://cafe.daum.net/daegudh) 중 '책이야기' 목록을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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