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삶의 터전 속으로)낙동간 1천300리 중 제1경 경천대

입력 2007-05-08 07:02:49

깎아지른 절벽에 노송 '한폭의 동양화'

▲ (사진 위 부터)경천대, 공검지, 남장사
▲ (사진 위 부터)경천대, 공검지, 남장사

태백 황지에서 발원하여 도도히 흘러가는 낙동강 1천300리 물길 중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경천대는 삼백(쌀, 곶감, 누에고치)의 고장, 자전거의 도시 상주에 잘 어울리는 수식어가 될 수 있는 곳이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경천대는 한반도 융기운동의 증거인 감입곡류하천이 전형적으로 나타나며, 하식애의 절경과 역암층에 발달한 토어, 아래로는 전형적인 하안단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중동회상 들판이 나타난다. 이것과 함께 주변의 노송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눈앞에 펼쳐 놓은 듯하다. 하늘이 스스로 내렸다고 하여 자천대라고 붙여진 또 다른 이름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경북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낙동강변 구릉지대에 나지막하게 솟아있는 옥주봉. 옥주봉 전망대를 오르는 등산길 좌우에 빽빽이 우거진 송림, 숫자를 적은 계단, 수많은 돌탑, 황톳길(맨발체험코스)이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솔향기, 돌탑, 황톳길에 음악을 더해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다 보면 어느새 333개 계단 끝의 팔각정 전망대에 닿는다. 3층 누각의 전망대에 오르면 U자로 휘감아 도는 낙동강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며, 드넓게 펼쳐지는 금빛 백사장과 반원을 그린 강 건너 중동회상리의 푸른 보리밭은 멋진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또한, 경천대에서 용머리바위로 병풍처럼 뻗어나간 암벽이 푸른 물길과 어울려 신비롭기만 하다.

전망대에서 뒷길로 내려오면 경천대다. 전망대만큼은 아니지만 눈앞에 펼쳐진 강변 풍경과 용소도 꽤 아름다운 곳이다. 바위가 3층으로 대를 이루는데, 그 가운데 소나무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경천대 바위 옆으로는 임진왜란 때의 명장 정기룡 장군이 젊은 시절 용마와 더불어 수련할 때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말 먹이통이 있으며, 노송 숲 속에는 무우정이라 불리는 단칸의 정자가 고아한 모습으로 있다. 경천대에서 산책로를 따라 남쪽 강가로 내려가면 초가집 몇 채의 작은 마을에 TV드라마 '상도' 세트장이 있다. 가까이서는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조금 멀어지면 강변 풍경과 초가집이 아주 운치있게 어우러져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에도 찾아볼 만하지만, 신록의 계절에 경천대는 인간과 자연이 담백하고 소담하게 어울릴 수 있는 곳이다. 자연이 빼어난 풍광을 자랑삼아 홀로 튀지 않고, 인간이 혼잡스럽게 나대지 않은 이곳 경천대. 가족끼리 친구끼리 정다운 사람끼리 고향처럼 찾을 수 있는 멋스러운 곳이라고 새삼 느낀다.

◆경천대 Q&A

▷경천대라는 명칭이 붙여진 유래는?

경천대의 옛 이름은 하늘이 만들었다는 뜻의 자천대(自天臺)였다가 조선 인조 때 우담(雩潭) 채득기 선생이 이곳에 무우정을 짓고 은거하면서 하늘을 떠받든다는 뜻인 지금의 경천대로 부르면서부터 경천대가 되었다.

▷경천대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하천의 곡류작용으로 인해 유로가 공격사면으로 이동하면서, 활주사면에는 대규모 하성충적평야(중동 회상 들판)가 분포하며, 공격사면에는 수직 절애(경천대~용머리바위)들이 곡류의 굽이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경천대와 비슷한 지형을 가진 곳은?

경천대는 감입곡류의 하천과 하식애 및 하안단구의 지형이 같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마을을 강이 휘감고 도는 형상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지역은 영월의 청령포, 예천의 회룡포, 안동의 부용대, 제천 탁사정, 정선 나리소, 영주 무섬마을 등을 들 수 있다.

◆경천대 주변에 이런 곳도 있어요.

▷충의사(지방문화재 기념물 제13호)

충의사는 조선 선조 때 무장으로 임진왜란 육전의 명장으로 큰 공을 세운 정기룡 장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 왜군과 60여 차례 전투를 치른 정기룡 장군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임진왜란 당시 상주성을 탈환한 전투와 정유재란 때의 고령전투, 성주전투가 대표적이다.

▷함창평야와 공검지(경북기념물 제121호)

의성의 안계들, 경주의 안강들과 함께 경북의 3대 미곡 산지인 상주의 함창들은 이안천 하류 이안면과 함창읍에 걸쳐 넓게 펼쳐진 충적평야(범람원)이다. 삼백의 고장답게 함창들에서는 비옥한 토양과 수리시설 확대 등 낙동강을 이용한 벼농사가 발달하였다.

공검지는 삼한시대의 3대 저수지 가운데 하나이다. 고려사지리지에는 공검이라는 큰 못이 있었는데 1195년(명종 25년) 사록 최정빈이 옛터에 축대를 쌓아 저수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못을 축조할 때 공갈이라는 아이를 묻고 둑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하여 공갈못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3천 평 남짓하게 축소 복원 중인데, 아직도 한여름에 연꽃이 가득 피어 옛 평화와 풍요를 전한다.

▷자전거 박물관과 남장사

곶감마을로 유명한 남장동, 남장사 가는 길목에 폐교(옛 남장분교) 운동장 한쪽에 자전거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초기의 자전거, 이색 자전거, 우리나라 자전거 역사, 자전거 체험 등의 코너로 꾸며져 자전거의 과거와 현재를 더듬어 볼 수 있으며, 100여 대의 자전거를 무료로 체험할 수도 있다.

노악산 중턱 산자락에 자리한 남장사는 832년(신라 흥덕왕 7년)에 혜소 스님이 개창하시고, 고려 명종 16년에 현 위치에 옮겨지어 남장사라 개명하였다. 특히 불교음악 '범패'의 첫 도래지이며, 보광전 철조 비로자나불과 전단향나무로 조성해 봉안된 후불목각탱은 국내에서 우수한 걸작으로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유산이다.

▷임란북천 전적지(지방문화재기념물 제77호)

상주시 만산동에 위치한 임란북천 전적지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선 중앙군과 왜군의 선봉주력부대가 최초로 싸운 장소로 900여 명이 순국한 호국성지이다. 1592년(선조 25년)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일을 순찰사로 임명하여 상주에서 일어난 의병과 함께 상주북방 북천에 진을 치고, 고니시가 이끄는 왜병 1만 7천여 명에 대항하였으나 패하였다. 이곳에는 순국한 9위를 배향하고 있는데 종사관 윤섬, 이경류 등 중앙군과 판관 권길, 사근도찰방 김종무, 호장 박걸, 의병장 김준신, 김일과 무명용사 1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문장대

높이 1,054m에 해당하는 문장대는 원래 늘 구름 속에 묻혀 있다 하여 운장대라 불렀으나, 조선 세조가 문무시종과 함께 병을 치유하는 기간 동안 날마다 시를 읊었다 하여 문장대라 하게 되었다. 세 번을 다녀와야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생길 만큼 신성한 이곳은 풍화된 화강암 바위(토르)의 일종으로 산마루에는 5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빈터가 있으며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화북병천마을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병천(우복동)마을은 용유계곡을 끼고 있는 산간마을로 주변에 청화산, 도장산, 속리산 등의 명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마을이다. 병천이라는 지명은 늑천정 부근의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길의 형상이 마치 호리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 조선시대 청암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 '우복길지가 청화산에 있다.'라고 하여 '우복동'또는 '우복고을'이라고도 불리며, 천혜의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상훈(영남삶터탐구연구회, 청구중 교사)

참고자료 : 삶터탐구활동 길잡이(대구남부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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