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유호연지와 반보기 애환

입력 2007-05-03 17:04:33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에 가면 유호연지(유등지)라는 못이 있습니다. 못가에 '고성이씨세거지(固城李氏世居地)'라 쓰인 표석과 군자정(君子亭)이란 정자가 있어 제법 풍류를 아는 이가 조성한 못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모르고 지나치면 몇몇 낚시꾼들이 세월을 낚는 그저 그런 동네 연못으로 여겨질 이 유호연지가 가정의 달을 맞아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까닭은 바로 '반보기'라는 세시풍속의 애환과 아련함이 서려 있기 때문이죠.

조선시대 전통가족제도 아래에서 시집간 딸의 친정나들이는 꿈도 못 꾸던 시절, 1년에 한 번 친정과 시집의 중간지점에서 딸과 엄마가 만날 수 있는 '중로상봉(中路相逢)', 즉 반보기가 행해졌답니다. 유호연지는 그 만남의 장소였던 거죠.

반보기 전날 밤, 딸은 시어머니가 마련해준 음식을 머리맡에 두고 뒤척이고 친정엄마는 딸에게 건네 줄 묵직한 보따리를 챙기느라 뜬 눈으로 지샙니다.

장소는 으레 시집 쪽에서 가까운 경관 좋은 곳이지만 잰걸음으로 달려온 엄마가 늘 먼저 도착합니다. 이윽고 저 멀리 딸의 그림자가 비치고 고된 시집살이로 까칠해진 딸의 얼굴이 가까워지면 모녀의 눈에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아가!"

"엄니!"

덥석 딸의 손을 움켜쥔 친정엄마는 거칠어진 딸의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물어봅니다.

"너거 시어마씨는 여적도 심술궂나?"

"…"

말없는 딸의 다소곳함에 친정엄마는 애궂은 하늘만 쳐다봅니다. 모녀의 애틋한 정은 그렇게 유호연지 물결 따라 퍼져나갑니다.

친정 길을 반만 간다고 반보기요, 다른 가족들은 볼 수 없다고 해서 반보기며, 눈물이 앞을 가려 엄마얼굴이 반만 보인다고 반보기입니다. 하루해는 그날따라 어찌나 빨리 저무는지.

오는 초여름 화려한 연꽃을 피울 저 유호연지의 수많은 꽃대처럼 1년 내내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5월이었으면 합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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