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입력 2007-05-03 16:56:10

직장에 다니는 남자들은 나이에 따라 몇 가지 엇비슷한 행동양상을 보인다. 갓 입사한 시절엔 누구나 호기롭다.(예외는 어디나 있지만) 서른 중반만 넘으면서 하나둘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한다. 다기세트를 장만해서 종일 녹차를 마셔대는 사람도 있다. 술자리라면 고개부터 흔들고, 어쩌다가 제 자식들과 전화통화를 할 때면 입이 귀에 걸린다. 종일 무뚝뚝한 얼굴이다가도 제 자식 이야기를 할 때면 실없는 사람이 돼 장황하게 말을 쏟아내기 일쑤다.

좀 더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더 이상해진다. 입사동기나 친구들과 술자리는 웬만하면 빠진다. 그런데 윗사람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수행한다. 굽실거리며 비위를 맞추고, 아예 입 속의 혀처럼 굴기도 한다. 밤에 집에 있다가도 회사 간부들이 찾으면 '비루먹은 말 같은 저를 불러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며 술자리로 달려나가 잔을 눈썹에 맞추고 들이킨다. 회사 동료나 친구들이 술 한잔하자고 하면 '바쁘다.'고 꽁무니 빼던 그들이 말이다. 행인의 눈, 객관의 눈으로 보면 꼴불견이다.

그들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건강을 챙기고, 좀 심하다 싶을 만큼 굽실거리는 것은 체질에 맞아서가 아니다. 굽실거리지 않고 뻣뻣하게 제 할 말 다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폼 나게 안 살고 싶은 사람도 없다.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느라 할 말을 않고, 안 할 말을 하는 것은 회사에 오래 다니고 싶기 때문이다. 단맛이 나는 술과 담배를 끊고, 힘든 운동을 시작하는 것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대쪽같은 성품과 깊은 학문으로 영의정과 우의정을 역임하셨고….' 따위의 집안 홍보책자에나 나올 법한 말은 소설에 가깝다. 설마하니 할 말 다하는 대쪽같은 성품으로 영의정과 우의정에 올랐겠는가. 직장에서 출세한 남편이나 아내가 성실과 근면, 재능으로만 그 자리에 올랐겠는가.

보통의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은 가족들 앞으로 엄청난 재산이나 희망을 유산으로 남길 능력이 없다. 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게 아니다. 회사에 오래 붙어 앉아 폼을 잡으려는 게 아니다. 그들은 다만 오래 살아서, 오래 회사에 다녀서 가족들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 땅의 수많은 남자들이 사내답게 굵고 짧게 사는 대신, 가늘고 길게 사는 길을 택하는 것은 천성이 가늘고 길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남편 된 자, 아버지 된 자의 책임을 다할 뿐이다.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와 아내들이 시장에서 콩나물 값 오백 원에 바들바들 떠는 것은 그것이 적성에 맞아서가 아니다. 그래야만 하기에 그럴 뿐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기꺼이 밀쳐두는 것, 하기 싫은 일을 기꺼이 떠맡을 수 있는 것은 가족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진정 피로한 몸뚱이를 일으키고, 늦은 밤 진정 피로한 몸뚱이를 눕히지 못하고도 우리가 견디는 것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4남매의 추억속의 가족사진(1970년도)

1970년도 저의 어릴 때 사진입니다. 제일 왼쪽이 저이고 그 다음이 큰언니와 작은 언니, 그리고 오빠 입니다. 오빠의 운동회날 4남매가 찍은 추억입니다.

그 밑으로 연년생 여동생과 남동생도 있습니다. 너무 어려서 운동회에 참석 하지 않는 듯합니다.

제가 4살 때 인 것 같은데 흑백사진이지만 전 지금도 그 옷이 기억납니다. 아마 주황색 원피스인것 같고 정말 예쁜 옷이였는데 헤어스타일을 보니 촌아이라는 느낌이 확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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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모교이기도 한 안동 원림 초등학교는 지금은 폐교되었지만 추억속에 영원합니다.

요즘 막내 아들이 운동회 연습을 합니다. 물론 운동회 때는 노란 체육복을 입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흰 런닝에 검정 팬티 같은 반바지가 체육복이였습니다.

오빠도 달리기를 잘 했지만, 저도 운동회가 생일보다 좋을 만큼 달리기를 잘 했는데......

전남희(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산새마을 아파트)

▶남해바다에서

작년여름에 참으로 오랜만에 남해바닷가에서 처가집식구들과 오랜간만에 즐거운 한때를보낸 아주뜻깊은 저희가족만의사진이지요^^

우차숙 (대구시 달성군 다사면 서재리 서재 우방 아파트)

▶우리 아이 어릴적에

첫딸 여운이가 7살때 찍은 사진.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여운이와 재홍이의 어릴적 모습이 담긴 유일한 가족사진이기에 바라볼때마다 미소가 절로 나온다.

최정희(대구시 수성구 중동)

▶"내가 남자였을 때(?)"

둘째 딸아이 돌을 대신해 찍은 가족사진이다. 이제 일곱살이 된 둘째 아이는 이사진을 볼때마다 '내가 남자였을때' 라고 말한다. 공주 같이 예쁜 옷을 입혀 사진 찍어주지 못한것이 미안하다. 하지만 무지무지 사랑한다. 내 딸들아~

박정기 (대구시 수성구 황금1동)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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