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악성 뇌종양 남편 돌보는 구본영씨

입력 2007-05-02 09:07:42

누구세요? 나 당신 아내에요…여보, 절대 먼저 가선 안돼요

▲ 구본영 씨가 1일 뇌종양으로 대구가톨릭대학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남편을 돌보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구본영 씨가 1일 뇌종양으로 대구가톨릭대학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남편을 돌보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누구세요?"

오늘 아침 눈을 뜨자 남편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억 속으로 침투한 몹쓸병 때문에 추억 속에 살고 있는 남편에게 오늘은 제가 낯선 여자였나 봅니다. 얼마 전엔 13년 전 결혼식 날 기억으로 돌아갔는지 웨딩드레스가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맞아요. 나 당신의 아내예요. 죽는 날까지 함께하자고 약속했잖아. 절대 먼저 가면 안 돼." 어찌된 영문인지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큰 고통을 참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남편을 부여잡았습니다. 남편의 얼굴과 어깨가 너무 작아져 있더군요.

남편이 과거 속에서 살게 된 것은 지난해 8월쯤이었습니다. 머리가 자주 아프다던 남편이 경련을 일으킨 뒤였지요. 병원비 걱정에 당장 정밀 검사를 할 수 없었던 남편은 몇 달이 지나서야 '악성 뇌종양 4기'라는 판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종양이 뇌신경을 누르고 있어 점점 앞이 보이지 않고 격렬한 두통과 치매 증상을 보일 것이라고 했죠. 억울했습니다. 젖먹이 시절,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마저 학창시절에 사고로 잃어야 했던 남편에게 이제서야 행복이 찾아왔는데. 우리에겐 사랑스런 아이들이 세 명이나 있는데,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간절한 희망으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남편은 더이상 '아빠'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가난하지만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살자던 모든 약속들이 산산이 깨져버린 순간이었습니다.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3천만 원짜리 전셋집을 뺐습니다. 남편 병간호에 매달리면서 아이들 역시 돌볼 수가 없었죠. 첫째 정인(가명·12·여)이에게 밥하는 법을 가르쳐줬습니다. 둘째(10·여)와 셋째(5) 밥이라도 챙겨줘야겠기에 인이에게 많은 짐을 지울 수밖에 없었지요. 얼마 전엔 정인이가 동생을 데리고 병원을 찾아와 "엄마, 난 아빠 얼굴 기억하는데 민이는 아빠 기억 못할까봐 걱정돼서 데리고 왔어."라고 말하더군요. 그 모습에 그만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지요.

며칠 전 남편은 수술을 받았습니다. 가능성은 없지만 아이들과 조금이나마 함께 있기 위해 종양의 크기를 줄이는 수술을 받았지요. 남편은 여전히 과거의 추억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셋째를 낳았을 때 이야기를 하다가 또 남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기억으로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이젠 정말 큰 욕심 없습니다. 우리 막내 기억 속에 남편이 존재하길 바랄 뿐입니다.

1일 오전 11시쯤 대구가톨릭대학 병원 입원실에서 만난 구본영(35·여) 씨는 몸무게가 40kg도 채 되지 않는 남편(39)의 몸 이곳저곳을 매만지고 있었다. 격렬한 두통 때문에 거동을 할 수 없는 남편은 가끔 정신이 돌아올 때만 대화가 가능했다. 구 씨는 남편을 포기하지 않은 듯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구 씨에게는 병원비로 진 빚 1천만 원은 물론 월세 30만 원도 없었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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