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조달행위는 민간기업에서도 생산활동에 필요한 물자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단순한 보조적 활동으로 여겼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조달부문이 기업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조달부문의 경쟁력 제고가 화두가 되고 이러한 흐름은 공공부문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공공조달 규모는 국민총생산(GDP)의 10% 정도로 2006년의 경우 약 85조 원으로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참여정부 이전만 해도 조달행정은 정책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컸으며 공정성 시비와 비리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일반국민은 조달이라고 하면 막연히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조달청이 어떤 기관인지, 그런 기관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이러한 문제들을 불식시켜 투명성을 제고하면서 동시에 조달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달청은 2002년 정부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를 구축하고 서비스를 개시했다.
나라장터는 업체등록, 입찰, 낙찰자선정, 계약체결, 납품검사, 대금지급 등 모든 조달과정을 발주기관을 방문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시스템이다. 또한 기존에 흩어져 있던 입찰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업체등록, 실적확인 등을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정부조달업무의 단일 창구이기도 하다.
나라장터는 대면접촉 감소 등 투명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연간 4조 5천억 원의 거래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44조 원이 거래되는 세계 최대의 '사이버 장터'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달행정이 헤쳐 나가야 할 과제 또한 상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라장터를 통한 업무 효율성 증가와 사업실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방분권의 확대 등으로 조달사업의 추이를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WTO 정부조달협정에 이어 한-칠레 FTA, 한-미 FTA 등 개방화가 가속화되고 공정성과 투명성의 제고, 다양하고 질 좋은 물품에 대한 요구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정부조달 환경에 어떤 전략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정부 전체의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선, 다양하고 전문화된 조달서비스를 제공해 고객만족을 극대화해야 한다. 조달행정의 패러다임이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하는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해 조달물자를 다양화해야 한다.
단순 입찰 및 계약 대행에서 벗어나 행사 대행, 프로젝트 관리 등 고객맞춤형 서비스를 확산시켜야 한다. 특히 다수공급자계약제도 등을 활용, 나라장터의 종합쇼핑몰을 통해 고품질의 다양한 물품을 공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신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정부조달시장에서 발을 붙이고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적정한 가격을 산정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기술개발을 유도하는 정책도 강화해야 한다. 공사시설물의 경우는 국민소득에 걸맞은 고품격 공공시설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지속적인 건설서비스 혁신이 필요하다.
이미 나라장터가 국내를 비롯해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지만, 이용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고도화해야 한다. 나라장터에 접속하지 않고도 이용자의 자체 시스템에서 조달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웹서비스 방식의 전자조달 서비스가 좋은 예이다.
계약 관련 인·허가 사항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업체등록 정보와 법령 시스템의 연계를 강화하고 정보보호 관리체계를 국제기준에 맞게 수립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나아가 글로벌 브랜드로서 나라장터를 개발도상국에 수출한다면 국내 IT업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미 FTA 정부조달분야 협상은 시장개방에 따른 국내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미국 조달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해외 조달시장은 문화·제도 등의 차이, 복잡한 규정·절차 등으로 진출이 매우 어렵다. 관련 부처가 함께 현지의 제도와 정책동향을 파악해 기업에 제공하고 기업의 진출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등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조달청이 중심이 되어 발족한 '해외조달시장 진출 자문위원회'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조달행정이 이 같은 환경변화를 잘 극복하고 당면과제를 잘 해결해서 공공기관과 조달기업의 만족도 증가뿐 아니라 정부의 전체적인 경쟁력 또한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최경수(전 조달청장·계명대 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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