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랑 있어 제일 행복해"
우성(9·초교 2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얼굴 왼쪽이 모두 까맣습니다. 큰 점이라고 합니다. 2평도 채 되지 않는 단칸방. 보증금 600만 원에 월세 10만 원. 그 한 켠에 걸어둔 제 키만한 거울을 슬며시 들여다보다 이내 베개에 얼굴을 파묻습니다. 자꾸 인형을 가져와 얼굴에다 댑니다. 6차례에 걸쳐 수술을 했지만 여전히 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안 보면 모르겠는데?" "그래도 (피부) 수술이 3번이나 남았어요."
우성이는 일흔 여덟의 할머니와 단둘이 삽니다. 우성이가 네 살 때 아빠가 꾸리던 공장이 부도가 나 집을 잃었고, 신용불량자가 된 아빠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 뒤 엄마도 우성이 곁을 떠났습니다. 우성이는 엄마 품이 한창 고플 철부지지만 절대로 엄마를 찾는 법이 없습니다.
옆에서 할머니가 놀립니다. "저번에 마취 깨면서 아프니까 '엄마야, 엄마야'하며 엄마 찾더만?" "그 엄마는 '사람살려, 엄마야!'할 때 엄마지 우리 엄마가 아니예요."라고 받아칩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 얼굴은 생각나는데 보고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어." 라며 강한 어조로 반말을 했습니다.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정부지원금 45만 원이 조손의 살림살이의 전부입니다. 쌀만 사고 반찬은 얻어먹으며 겨우겨우 한 달을 버텨냅니다. 할머니는 무릎 관절염이 심해 쉬이 일어서질 못하고, 지난해엔 백내장 수술을 했지만 여전히 앞이 어두침침하답니다. 다른 할머니들처럼 폐지를 주워 파는 일은 어렵게 됐습니다.
방에 딸린 부엌이자 화장실에는 수채구멍에서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를 막기 위해 플라스틱 용기를 박아놨습니다. 여름에 주인집에서 에어컨이라도 켜면 더운 바람이 방안을 삼켜 숨이 턱턱 막힙니다. 벌써 5월인데 아직 전기장판이 켜져 있습니다. 그래도 뭐가 그리 신나는지 우성이는 제 키보다 높은 장롱 위에서 바닥에 깔아둔 이불 위로 펄쩍펄쩍 뛰어내립니다.
"어제 할머니랑 구구단을 외웠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안 틀렸어. 3월 28일은 내 생일인데 할아버지 제사이기도 해서 많이 바빠요. 생일에 할머니가 선물도 안 줬어. 크리스마스 때도 산타가 선물 안 줬는데. 저저번 크리스마스 때는 세탁기 안에 케잌이 있었거든."
우성이는 반말과 경칭을 섞어 말합니다. 어찌나 똑부러지게 얘기하는지 '아나운서'하면 되겠다고 했더니 "박지성, 안정환처럼 될거야. 프랑스전에서 박지성은 아무도 못 넣는 골을 넣었고 안정환은 '반지의 제왕'이니까요. 태권도 학원 포인트 모아서 할머니 안마기도 사줄거예요." 우성이는 마구 아무렇게나 재잘거렸고 할머니는 마냥 웃고만 있습니다. 우성이는 동사무소의 도움으로 4차례 수술을 했고, 인근 성당에서 2번의 수술을 또 도와주었습니다. 컴퓨터와 옥돌 전기장판은 우성이의 학교에서 지원했다고 합니다.
힘들지만, 가난하지만 이들 조손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할머니는 "소원요? 달서구에 밥 안 묵는 아이들 밥 잘 묵게 해주는 약을 파는 약국이 있다던데 비싸서리, 그거 먹이는게 1차 소원이고요. 경북대병원에서 수술이 3번 남았는데 남들이 다 도와줘서 잘됐는데 앞으로도 잘 됐으면 하는기 2차 소원이구먼. 지 고생 그만하고 지 핀하게(편하게) 사는기 3차고···."
우성이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울지는 마."하더니 "내가 죽을 때까지 할머니랑 함께 사는 거. 할머니랑 나랑 '69' 차이나니까 내가 31만 더 살면 되요. 할머니랑 있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라며 소원을 얘기했습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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