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범인 조승희 씨가 한국 국적이라는 점 때문에 한 번 더 놀랐다. 일부에서는 지나친 충격에 빠져 적절한 수준을 넘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 언론에서는 사건 원인에 대한 분석이 여러 가지로 나왔다. 그러나 우리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다시 한 번 그가 한국계 이민자라는 점, 이민자의 문제가 사건 원인이 됐다는 점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보였다. 때문에 미국 정부와 언론조차 우려할 정도로 지나친 애도와 사과가 이야기됐고, 한미 FTA나 비자 면제 등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갖가지가 쏟아졌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제시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충분히 이해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우리나라 특유의 민족주의 혹은 집단의식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NBC가 조 씨의 동영상을 공개한 것이 적절한가,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가 등도 관련해서 짚어볼 문제들이다.
▨ 사건 원인 분석
이번 사건의 발생 배경에 대한 분석은 굵직굵직한 것만 해도 여럿이다. 먼저 직접적인 원인이 된 조 씨의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들 수 있다. 그가 우편으로 보낸 동영상을 보면 심각한 정신적 장애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도 방치됨으로써 참사를 불렀다고 할 수 있다. 사건의 배경으로는 미국의 총기 관리 제도와 관습이 지목된다. 누구든 쉽게 총을 구할 수 있고, 가정이나 개인이 보유한 총기가 2002년 기준으로 2억 5천만 정을 헤아리는 나라에서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비극이라는 것이다. 또한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학교, 경찰의 안이한 대처가 지적받고 있다. 1차 총격 후 2시간 이상 지난 뒤 2차 총격에 나서기까지 거의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위기대응 시스템 부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이처럼 간단하게만 짚어도 여러 가지 원인이 나온다. 여러 언론과 전문가들은 그 범위를 넓히고 높여 다양한 견해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죽은 이상 정확한 원인과 진상은 알기 힘들다. '많은 사람이 온갖 추측과 분석을 동원해 사태를 설명해 보려 한다. 외톨이의 비정상적인 심리에 관심이 모아지고, 조 씨가 쓴 폭력적인 내용의 짧은 희곡이 주목받았다. 부자에 대한 증오심을 담고 있는 조 씨의 글이 공개되면서, 사태 분석은 또 다른 방향으로 번져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징후와 증거들을 다 모아도 진상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부자에 대한 적개심에 불탄다고 모두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조 씨를 분석하는 일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어쩌면 공포에 맞서려는 의식적인 행위인지도 모른다.'(신문 칼럼)
▨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
버지니아공대 참사의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발표 이후 곳곳에서 나온 주장과 제안들은 지금 보면 낯 뜨거울 정도로 조악한 것이 적잖다. 사건 직후 점잖게 추모하던 목소리는 '한국인 조승희'가 불거지자 깊이모를 죄책감과 우려로 변모했다. 피해 당사자인 미국이 손사래를 치는데도 청와대가 몇 번이나 애도를 표하고 외교관이 금식을 제안하는 아이러니한 광경까지 연출했다.
'한국은 애도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세 차례나 애도를 표했으며 부시 미 대통령에게 조문을 보냈다. 대선 주자들도 묵념을 올렸고 군 수뇌부는 주한 미군사령관에게 위로 서한을 보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인터넷에 위로와 애도의 심정을 쏟아내고 있다. 곧 젊은이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모여들지도 모른다. 슬픔의 다음에는 무엇이 와야 할까. 한국에는 비 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이 있다. 한국인과 미국인은 이번 일을 슬픔의 강을 넘어 양국 동맹과 친선의 대지가 더욱 굳어지는 계기로 만들어야 된다.'(신문 칼럼)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걱정거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는 사건이 국가 간 문제로 비화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미 FTA 비준 동의와 비자면제 협상, 미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등 양국 현안에 나쁜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미국 조야와의 대화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 차원의 고위급 조문단을 보내 미국민들을 위로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본다. 사건의 본질이 인종 문제가 아니라 총기소지에 있음을 두 나라 국민이 충분히 헤아리도록 양국이 노력해야 한다.'(신문 사설)
이런 생각은 어떤 행동을 요구한다. 사건의 본질과 관계가 없어도 괜찮다는 투다. '정부가 사건의 문제점을 직시하여 국가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미국의 주요 방송에 진솔한 사과와 유감을 나타내는 광고라도 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한국인은 직접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진솔하게 미안해하고, 적극적으로 위로하려 성의를 다하는구나" 느끼게 해야 한다.'(신문 칼럼)
▨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냉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섣부른 사죄나 국가적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들린다. '오늘 아침 한 조간신문은 유명 시인의 「우리가 당신들을 죽였다… 평화를 사랑했던 우리 민족이… 그 마음이 무디어졌다는 한마디 이 외에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부디 용서하시라」란 내용의 조시(弔詩)를 게재했다. 시인은 우리 민족이 당신들을 죽였다라고 사실상 말한 셈이다. 과연 그렇다고 단언해서 말할 수 있는가. 미국 사회조차 이번 사건의 본질을 아직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의 사죄는 과연 적절한 것일까.'(신문 칼럼)
우리나라 안에 있는 외국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견주어보면 어떤 행동이 적합한지 알 수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이런 끔찍한 사건을 일으켰다면, 설령 그가 귀화한 한국인이라고 해도 미국인들과 같은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보일지 궁금하다. 추모 방식도 극히 절제돼 대형 참사 때마다 아비규환을 벌이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국내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사태 수습보다 책임 논란이 더 뜨거웠을 것이다.'(신문 칼럼)
사건의 원인이 미국사회 자체에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하라는 충고도 설득력을 갖는다. '미국이 횡행하게 자행해왔고 여전히 자행하고 있는 세계각지에서의 총기난사와 패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묵인 또는 동조까지 해 주면서 이번 일에 대해서는 자성을 촉구하기는커녕 단식까지 하겠다는 태도가 과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무슨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 컴퓨터게임이 문제라거나 소심한 성격이 문제라거나 워낙에 정신병적 징후가 있었다거나 하는 진단, 그의 국적이 한국이어서 죄송하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민주노동당 논평)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는 다른 쪽의 주장에서도 나온다. '이 사건은 한국인에게는 자신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미국인에게 인종주의라는 시한폭탄이 있다면, 한국인에게는 민족주의라는 마음의 장벽이 있다. 한국인은 겉으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때처럼 개방이 살 길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민족 자폐증에 걸려 있다. 이제는 물류 시장의 개방뿐만 아니라 마음의 개방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 안의 민족주의를 걷어내지 않고는 한·미 FTA를 기점으로 한 제3의 개국은 헛된 꿈에 불과하다.'(신문 칼럼)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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