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대구지하철 한 역사 물품 보관함에서 8개월 된 영아의 시신이 발견됐다. 아기를 묻기 위해 역사로 돌아왔다 경찰에 자수한 스물두 살의 엄마는 가족들에게 임신 사실을 숨겨왔는데, 혼자 아기를 낳고 기절했다 깨어 보니 태아는 이미 죽어 있었다며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숨진 아기는 옷가지와 비닐봉지에 싸인 채였다. 당시 신문지상으로 보도를 접하고 아기도 불쌍하고 그 어린 엄마도 측은해 한참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미혼모에 대해서도 따뜻한 시선을 촉구하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특히 이들 미혼모 가운데서도 '리틀맘(10대 미혼모)'은 그 중심에 떠올라 있다.
청소년들의 이성교제가 일반화하고 성에 대한 인식도 점점 개방적으로 바뀌면서 리틀맘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리틀맘은 전국적으로 5천~6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통계청이 2005년 발표한 15~19세 인구(약 150만 명)의 출산율을 바탕으로 계산하면 한 해 3천400여 명의 10대 청소년이 아기를 낳는 셈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태어난 신생아 10명 가운데 4명의 엄마가 미혼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주위의 눈길은 차갑고 사회적 지원은 없다.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고자 한 그 산모를 비난하기 앞서 우리나라에서 미혼모가 처한 현실을 두고 심각하게 고민해 본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미혼모들에게는 합법적인 결혼 상태에서 임신하고 출산하는 산모들보다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악조건을 무릅쓰고 출산을 결정한 용기 때문이다.
새로 나온 책 '안녕히 계세요(남찬숙 글/우리교육 펴냄)'는 미혼모 엄마와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 진영이의 이야기다. 진영이는 한 동네 친구로부터 엄마가 젊었을 때 '날라리'였을 거라며 놀림을 받는다. 그날 밤 진영이는 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서 엄마가 미혼모라는 것과 아빠가 어디 사는지 전혀 모른다는 말을 듣게 된다. 어릴적 부모에게 버림받은 엄마는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늘 사고를 치며 밑바닥을 전전했다고 울며 고백한다. 열여덟 살에 미혼모 쉼터에서 진영이를 낳은 엄마는 다른 미혼모처럼 진영이를 입양 보내지 않고 혼자 힘으로 키웠다. 자기를 버린 부모가 한 짓을 아들에게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슴에 큰 상처가 생긴 진영이. 이웃의 다정한 옥탑방 아저씨는 "엄마의 과거가 어떻든 널 선택했기 때문에 엄마를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다독여준다. 책은 미혼모 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심경을 제법 잘 묘사하고 있다. 소년이 주변의 쑥덕거림에 괴로워하거나 엄마의 재혼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에서 판타지는 찾아볼 수 없다. 엄마를 위해, 엄마를 시집보내기로 결심한 진영이는 해질 무렵 동네 뒷산에 올라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향해 외친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르쳐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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